`두 대통령정국 1년` 베네수엘라 이번엔 의회 의장도 셋

'한 나라 두 대통령'의 혼돈이 계속되는 베네수엘라에서 이번엔 국회의장이 세 명이나 존재하는 전대미문의 상황까지 벌어졌다. 7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언론 엘나시오날은 야권 지도자 후안 과이도 의회 의장(36·인민의지당)이 이날 무장경찰 저지를 뚫고 전기가 끊긴 의회(AN) 건물에 진입해 취임 선서를 마쳤다고 전했다.
앞서 의장 선거가 열린 5일 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측근 의원들이 루이스 파라(41) 의원을 의회 의장으로 선출했고, 같은 날 야권 의원들은 엘나시오날 건물에 모여 과이도 의장을 재선출한 바 있다. 파라 의원은 7일 과이도 의장이 의회에 진입하기 전 의장석에 앉아 회의를 연 후 퇴장했다.
베네수엘라 국회의원 수는 167명인데, 파라 의원 측은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81명의 지지를 얻어 의장으로 당선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과이도 측은 100명의 지지를 얻어 자신이 의장으로 당선됐다고 주장 중이다. 파라 의원은 야권 정치인이지만 과이도 측에 등 돌린 인물이다.

과이도 의장 취임 공식 선언을 기점으로 베네수엘라는 의회 의장이 셋인 상황을 맞았다. 현재 베네수엘라 의회는 일반 의회(AN)와 제헌의회(ANC)가 공존하고 있다. 2017년 총선 때 '반(反)마두로' 야권이 대승을 거둬 의회(AN)를 접수하자 마두로 대통령은 충성파로 구성된 제헌의회(ANC)를 만들었다. 디오스다도 카베요 제헌의회 의장은 "현행법에 따르면 의장은 의회 건물 내에서 선출된 자여야 한다"면서 과이도 의장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나섰다.
'두 대통령 정국' 베네수엘라에서 의회 의장직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과이도는 지난해 1월 5일 의장에 당선되자 "불법대선을 치른 마두로는 대통령 자격이 없는 바 헌법 제233조에 따라 의회 의장인 내가 임시 대통령"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의회(AN)가 새 의장을 뽑았다"면서 파라 의원이 의장이라고 밝혔다.

이를 의식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과이도 의장만이 베네수엘라의 유일한 합법적 대통령"이라고 7일 공식 밝혔다. 미국은 지난 해 1월부터 과이도 의장만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당시 과이도 의장이 파견한 외교관을 대사로 받아들였다.
반면 아르헨티나에서는 외무부가 과이도 임시대통령이 파견한 아르헨티나 주재 엘리사 트러타 가무스 대사에 대해 특사 등 임무 수행 승인을 철회했다고 현지신문 라 나시온이 7일 전했다. 지난 해 12월 좌파 계열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친미'성향인 전임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대사 승인 결정을 철회한 것이다.
'한 나라 두 대통령'에 이어 '세 국회의장' 사태가 벌어지면서 베네수엘라 정국 혼란은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외신 전망이 나온다. 과이도 의장은 오는 9일부터 주말까지 수도 카라카스 등지에서 대규모 집회를 예고했다.
지난해 10월 미주기구(OAS)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새 나라를 탈출한 베네수엘라 이민자(461만2000명)는 460만명을 넘어섰다. 베네수엘라 내에서는 자국 볼리바르 화 가치가 추락해 달러가 대신 통용되고 있다. 미국 블룸버그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한 베이커리에서 파는 카페라테 값을 추적해 내는 대안 물가지수, 이른바 '라테 지수'를 보면 2019년 한 해 동안 라테 한 잔 가격은 6567%폭등해 지난해 12월 말 한 잔에 300만 볼리바르화를 기록했다.
[김인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