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영화 `남산의 부장들` 원저자 "작두 위를 걷는 심정으로 중앙정보부에 대해 썼다"
입력 2020-01-05 11:13  | 수정 2020-01-05 13:29
`남산의 부장들`에서 김재규 역을 맡은 배우 이병헌. [사진 제공 = 쇼박스]

충무로는 이야깃거리에 언제나 목마른 곳이다. 역사에 이름 한 줄이라도 걸친 사람을 발견하면 온갖 상상을 덧대어 영화화해왔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가 이토록 드물다는 건 다소 의아한 구석이 있다. 누군가는 절대권력을 누린 유신의 심장을 쏜 혁명가로 평가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게 마땅한 반역가로 기억하는 남자, 김재규다.
총살 직전까지도 김재규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 바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와 동명의 원작 논픽션 '남산의 부장들'에는 이를 보여주는 다양한 일화가 실려 있다. 1978년 1월 김종필 의원이 가택수사를 당한 뒤 "내가 무슨 죄가 있느냐"고 항의하자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가 답한다. "각하, 초대 정보부장을 지내셔서 잘 아시지만 정보부장 직무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공산당 잡는 거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 각하를 철두철미하게 모시는 것입니다. 만일 각하를 포함해서 누구라도 다른 생각을 가진다면 이 김재규가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충식 교수는 논픽션 작품을 한 번 더 쓸 수 있다면 김옥균에 대해 다뤄보고 싶다고 했다. `개혁은 왜 조롱당하나`라는 부제를 붙이고 싶다고. [한주형 기자]
책에는 그런 김재규에게 다른 생각이 싹트는 과정이 기록과 증언, 사진을 통해서 드러난다. 해석에서 거리를 두며 팩트로만 이미지를 쌓아 올린다. 최근 서울시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저자 김충식 가천대 교수(65)는 "작두 위를 걸어가며 썼기 때문에 형용사와 부사를 쓸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보부장을 지낸 사람은 주변에 법조인이 많고, 해석과 의견을 붙였다간 소송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최소화했다는 설명이다.
김재규를 포함해 총 10인의 정보부장을 다룬 기획이다. 연재는 그가 동아일보에 재직하던 1990년 시작됐다. 보통사람을 표방한 노태우 대통령 집권기였지만 여전히 시대는 엄혹했다. 한 번은 그가 기사에 첨부한 한 장의 사진으로 정부가 발칵 뒤집혔다. 1961년 반혁명죄로 연행되던 장도영 오른 편에 당시 대위이던 노태우가 함께 찍힌 것이다.
"이 앵글에 노태우가 등장하는 사진은 내가 처음 발굴했다. 왜 이 사진이 의미가 있느냐. 박정희는 쿠데타를 하면서 장도영을 앞세웠다. 그런데 쿠데타 성공 이후 그를 처단해서 자신의 권력을 세운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육사 8기와 5기가 싸웠는데, 노태우와 전두환이 주축이었던 11기는 5기 편을 든 것이다. 당시 원수 모독, 수사 기록 유출이라고 해서 난리가 났는데, '어차피 동아일보 1면 톱도 아니고 주말판 간지에 KCIA(중앙정보부) 스토리처럼 나간 거니깐 안 본 사람도 많다'고 해서 넘어간 것이다. 김충식 조져봤자 '다시 전두환 때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걱정한 거지."
최근 서울시 중구 한 호텔에서 만난 김충식 교수가 `남산의 부장들` 개정 증보판을 들고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연재하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인터뷰이를 맞은 편에 앉히는 것이었다. 중앙정보부장들을 비롯해 당시 요직을 차지했던 여러 실권자가 그를 피했다.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사람 입장에선 기자를 만나는 게 백해무익하다. 도망 다니는 게 맞지 않겠냐. 5대 정보부장이었던 김계원 씨는 교회에 갔다가 동창회에 갔다가 지방에 갔다가 하면서 몇 달 동안 피해다니더라. 그분에 대해 써야 할 순번은 다가오고 있었다. 인터뷰 기법을 하나 말해주자면, 일요일 밤 10시 악천후면 못 만날 사람이 없다. 눈이 오는 일요일 밤 10시라면 반드시 집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갔다. 문을 안 열어주는 사람에게 '내가 취직을 부탁하거나 돈을 빌리러 온 건 아니다'고 계속 말했다. 1시에 열어주더라.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쓸쓸히 있더라. 맥주 한 캔 마시면서 날이 샐 때까지 이야기하고 마음을 텄다."
2년 2개월의 연재 기간 동안 '남산의 부장들'은 최고 히트 코너가 됐다. 동아일보 연재물 최초로 고정광고도 유치했다. 1993년에 책으로 묶어서 냈는데, 한일 양국에서 도합 52만부가 나갔다. 그는 뉴 팩트에 대한 집착이 인기의 원동력이었다고 본다. "나로서 이 기획기사는 완전한 가욋일이었다. 1년 간 청와대 출입하는 동안에도 계속 썼다. 그렇다고 대충 쓸 수 있겠나. 어떤 기사든지 그 안에는 3~4개의 새로운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1995년께 복학한 우민호 감독은 이 책을 처음 읽고 손을 부르르 떨었다고 한다. 말론 브란도가 나오는 '대부' 같은 느와르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후에 김 교수에게 와서 털어놨다. 2015년 '내부자들'로 명성도 얻고 돈도 벌었으니 영화화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흔쾌히 수락했다. 내가 쓴 역사책이 예술의 영역에서 어떻게 극화되는지 보고 싶었다."
오랫동안 정치, 사회 분야를 취재한 그는 정상에 올라 추락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한다. [한주형 기자]
김재규 역을 맡은 배우 이병헌도 그에게 와서 조언을 구했다. 김재규는 어떤 유형의 인물이냐는 질문이었다.
"차지철이나 김재규나 일인자의 인정을 받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김재규가 거느리던 정보부는 총원이 1만명 정도 되는 조직이었고. 그런데 그 수장을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대위(차지철)가 밑에 두고 부리듯하며 면박을 주니깐 모멸감이 보통이 아니지. 그렇다고 단순 박정희 시해범은 아니다. 유신정국의 끝을 대규모 유혈 사태 없이 막을 방법에 대한 고민을 했던 건 맞는다. 당시 미국 쪽 기록을 보면 박정희를 제거해야 한다고 써놓은 게 많다. 김재규는 그런 사인을 계속 받았던 거지."
민주화가 된 지도 30년이 지난 지금, 왜 우리는 무고한 사람을 잡아 고문했던 중앙정보부의 권력다툼을 들여다 봐야 할까.
"인문학에서 문은 글월 문(文)이다. 한국어 '무늬'도 글월문에서 나온 거다. 사람이 발자국을 찍어서 무늬를 만든 게 인문학이란 말이다. 우리는 도덕과 윤리를 배우고, 성경과 불경이 있는데도 항상 남을 해치는 함정에 빠진다. 사람이 하는 일이 얼마나 어설픈지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한 번 더 논픽션 작품을 쓸 기회가 온다면 김옥균에 대해 다뤄보고 싶다고 한다. '개혁은 왜 조롱당하나'라는 제목을 달고 싶다고.
논픽션 작가를 꿈꾸는 사람을 위한 조언도 곁들였다.
"가디언 주필 찰스 스콧이 그런 말을 했다. '논평은 자유지만, 팩트는 신성하다'고. 기자나 논픽션 작가나 다 마찬가지다. 남들이 상상했던 팩트가 아니라 당신의 호미를 가지고 직접 파낸 팩트가 무엇인지 확인해 봐라. 30년이 다 지난 이 책에 우민호가 감동해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런 새로운 앵글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거 아니겠나.오피니언은 당신이 안 붙여도 남이 다 붙이게 돼 있다. 본인의 어설픈 의견을 보탤 필요가 없다. 논픽션 작가는 신성한 팩트를 통해서 울림을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료 하나를 끄집어내는 것 자체로 소임을 다 한 거다."
[박창영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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