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주하의 1월 2일 뉴스초점-방명록의 정치학
입력 2020-01-02 20:09  | 수정 2020-01-02 20:51
정치인이나 주요 기관 인사들이 1월 초면 연례행사처럼 찾아가는 곳이 있죠. 바로 국립현충원입니다. 다들 방명록에 글을 남기는데 여기엔 짧지만, 새해엔 뭘 하겠다는 각오가 응축돼 있죠.

올해는 어땠을까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적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들은 무엇을 느끼셨나요. 물론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그 느낌은 제각각이겠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국민 중심 민생정당, 국익 중심 안보정당. 위기의 대한민국 살리겠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양당 대표의 이런 방명록 글귀는 총선을 넉 달여 앞둔 슬로건이나 다름없죠.

청와대와의 관계가 결코 편치 않은 윤석열 검찰총장은 '바른 검찰', 김명수 대법원장은 '성심을 다하는 재판'이라고 썼습니다. 둘 다 '어떻게'까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법치 사회 최후의 보루인 검찰과 법원만큼은 외풍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각오일 거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너무 긴장해서인지 맞춤법을 틀리거나 한자를 잘못 써서 구설에 오르기도 하고, 망신살이 뻗치기도 하지만, 후배 정치인들에게 모범 답안처럼 회자되는 방명록도 있습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 방명록에 쓴 '음수사원'. '마시는 물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한다'는 뜻으로 우리 민주주의가 생활화된 데는 김 전 대통령과 같은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해석을 달았습니다.

오늘 현충원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확실한 변화로 새로운 100년 첫 출발'이란 글로 올 한 해 국정운영에 대한 생각을 국민에게 전했습니다.

새해 첫날 방명록은 비록 한 줄의 글이지만 국민 앞에서 다짐이자 약속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한 줄의 글이 단지 일회성 화제를 남기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한 해가 지난 뒤 약속을 지켰다는 후한 평가까지 받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거창한 약속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내일을 만들어 가는 정치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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