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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한계·규제 부딪힌 대기업…PEF·해외자본에 회사 팔았다
입력 2019-12-26 17:47  | 수정 2019-12-26 20:33
올해 국내 기업 인수·합병(M&A)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진은 국내 정보기술(IT) 기업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 전경. [한주형 기자]
◆ 국내 M&A 사상최대 37조 ◆
2014년을 정점으로 주춤했던 국내 기업 경영권 인수·합병(M&A)이 다시 급속히 폭증하고 있다. "국내에서 더 이상 사업하기 어렵다"는 기업들의 비명이 매물로 현실화한 것이다. 기업 오너십이 기존 산업자본에서 사모투자펀드(PEF), 해외 자본으로 급속히 옮아 가고 있는 현상도 관측된다. 강력한 오너십을 바탕으로 국내 산업의 장기 성장을 이끌어야 할 대기업집단의 힘이 약화되면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26일 매일경제 레이더M 집계에 따르면 국내 기업 경영권 M&A 중 기업이 PEF에 매각한 거래(PEF·기업 컨소시엄 거래 포함)는 총 8조54억원이다. 아울러 국내 기업이 해외 투자자에게 매각된 거래는 총 6조7503억원이다. 기업 경영권이 기존 산업자본에서 PEF와 해외 자본으로 넘어간 규모가 14조7557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이는 사상 최대를 기록한 올해 국내 기업 경영권 M&A의 총 37조7601억원 대비 39% 수준이다.
올해 PEF로 손바뀜한 주요 기업으로는 롯데카드(거래액 1조3811억원), 린데코리아(1조3000억원), SKC코오롱PI(6080억원), 서브원(6021억원), 롯데손해보험(3734억원), 동부제철(3600억원), 메디트(3200억원), 한국유리공업(3136억원), 성동조선해양(3000억원) 등이 있다. 공정거래법상 규제 이슈가 불거진 데다 한국에서 기업하기 어렵다는 위기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이 같은 사례가 늘고 있다.
해외 매각 사례들은 "더 큰 성장을 위해선 규제에서 자유로운 해외 매각이 답"이란 인식을 뒷받침한다. 우아한형제들(4조7544억원), 닥터자르트(1조3193억원), 커피빈(4122억원), 수아랩(2315억원) 등은 해외 투자자를 찾아 성장 한계에 부딪힌 국내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극명히 보여준다.
PEF의 기업 인수 트렌드는 자본 시장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해외 투자자로의 기업 매각 트렌드는 지난해부터 본격화하는 조짐을 보였다. 지난해 금호타이어(6463억원), 스타일난다(6000억원), 케이유엠(5400억원), 웅진식품(2601억원) 등이 줄줄이 해외 투자자에게 팔려 나갔다. 국제통화기금 사태 때처럼 '부실 기업' 매각 상황도 아니라는 점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국내 규제에 질린 대기업집단을 비롯한 산업자본이 웬만해서는 국내 기업 인수를 살펴보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을 쓸어 담고 있는 PEF 업계에서도 국내 기업의 국내 기업 인수에 대한 소극적 분위기를 공통적으로 얘기한다. 한 중견 PEF 관계자는 "기업 매각을 위해 대기업들과 이야기해보면 M&A는 의사 결정에서 가장 후순위로 밀려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내 기업이 M&A 시장의 큰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 하나다. 바로 '생존'을 위한 집중이다.
예를 들어 유료방송 업계는 살기 위해 일제히 덩치를 불렸다.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 합병(5조원),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8000억원) 등은 생존을 위해 단행한 M&A다.
'신발 끈을 조여 매는 기업가정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한 대형 PEF 관계자는 "실제 기업을 찾아가 보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데 만족해 있는 '고인물' 기업도 상당수"라며 "조금만 더 공들이면 더 큰 기업으로 키울 수 있어 PEF에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은 악'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고조되며 기업을 더 키울 유인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
[한우람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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