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저금리 직격탄 맞은 연기금…日GPIF 작년 수익률 -7.5%
입력 2019-12-22 18:05  | 수정 2019-12-22 21:30
일본 도쿄에 위치한 일본 공적연기금 본사.
◆ 2020신년기획 / 지구촌 제로금리 공습 ① ◆
지난 6월 일본은 정부가 발표한 보고서 하나 때문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일본 금융청 금융심의회가 발표한 '고령사회에 있어서의 자산 형성·관리' 보고서에 노후에 공적연금이 부족할 수 있으니 각자가 총 2000만엔(약 2억1200만원) 정도의 부족분을 축적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다케하나 가쓰토시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본인은 그동안 금리에 따른 이자와 부동산 그리고 공적연금이라는 3개 축에 개인 자산관리를 의존해 왔다"며 "3개 축이 하나씩 다 무너지면서 노후를 지탱할 방법이 사라졌다고 느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흐름의 '피해자'는 현재 사회 생활의 주축인 30~50대다. 일본 내 외국계 금융사에서 일하고 있는 아오스키 마사키 씨(41)는 "몇 년 전부터 지인들과 좋은 시절을 보낸 60대 이상과 달리 우리는 연금을 많이 못 받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지금 세대가 낸 보험료를 국민연금공단에 맡겼다가 은퇴 후 돌려받는 '적립 방식'이다. 반면 일본 공적연금은 현역 세대가 낸 보험료로 은퇴 세대에 지급할 연금액을 충당하는 '부과 방식'이다. 연금을 받는 사람은 늘고 보험료를 낼 수 있는 사람이 감소하면 결국 퇴직 후 연금 수령액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 고이치 일본생명기초연구소 전무는 "세대 간 대립이 확산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정작 일본에서 돈을 들고 있는 이는 퇴직자들이다. 지난해 일본 총무성 조사에 따르면 가구주가 70세 이상인 가구의 저축성 자산 규모는 평균 2249만엔 수준인 데 비해 40세 미만은 3분의 1도 안 되는 600만엔에 불과하다.

정규직 근로자와 공무원 노후 소득에서 많게는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연금 또한 제로금리 시대 직격탄을 맞았다. 저금리 시대 장기화로 운용 수익이 줄면서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일본 공적연기금(GPIF) 수익률은 -7.50%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소액 비과세 저축계좌(NISA)나 개인형 퇴직연금인 이데코를 장려하는 것도 기업연금이 파탄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도쿠시마 가쓰유키 일본생명기초연구소 연금센터장은 "앞으로 '해피 리타이어먼트(행복한 은퇴 생활)'는 없다"며 "퇴직 후 건강을 유지하면서 길게 일하는 것만이 노후 대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도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 연금제도 수준은 전 세계에서도 최고로 꼽혀왔다. 글로벌 퇴직연금 컨설팅사인 머서와 호주금융센터가 발표한 '멜버른·머서 글로벌 연금지수(MMGPI)'에 따르면 올해 네덜란드 연금은 종합지수 81점으로 지난해에 이어 1위로 선정됐다.
그러나 이렇게 공고한 연금체계조차 저금리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네덜란드 기금 규모는 총 1조5000억유로(약 1950조원)에 달하고 견조한 운용 성적도 내고 있지만 포괄비율(coverage ratio)은 꾸준히 떨어지는 추세다. 예를 들어 2250억유로를 차지하는 네덜란드 의료인연금(PFZW)의 포괄비율은 올해 9월 89.8%까지 떨어졌다. 포괄비율은 미래에 연금에 대한 접근권을 갖는 노동인구 비율로 연금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보장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규제·환경 등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에 은퇴자 수백만 명이 받을 연금 수령액이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PFZW 측은 "향후 수십 년간 연금펀드가 투자 수익을 거의 얻지 못할 것을 가정하고 운영하고 있다"며 "지속 가능한 상황이 아니다"고 우려했다.
다음 세대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부모 세대처럼 연금만 믿고 저축과 투자를 등한시했다가는 불안한 노후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다. 개인 투자보다 사회복지에 많은 비중을 두던 네덜란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34세 직장인 미셸은 "저금리가 되면서 가상화폐 같은 새로운 투자처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이승훈 차장(샌프란시스코·LA) / 김강래 기자(도쿄) / 정주원 기자(런던·암스테르담·바우트쇼텐) / 이새하 기자(스톡홀름·코펜하겐·헬싱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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