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日가계 금융자산 3분의2 노년층에 집중
입력 2019-12-22 17:57  | 수정 2019-12-22 21:17
◆ 2020신년기획 / 지구촌 제로금리 공습 ① ◆
"지난해 은행에서 받은 이자는 고작 4유로(약 5200원)에 불과합니다. 어차피 주택담보대출 이자와 세금을 내고 나면 남는 돈도 없어서 저축할 필요를 못 느껴요."
네덜란드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미하일 씨(30)는 태어나서 한 번도 투자를 해본 적이 없다. 은행도 입출식 계좌 정도만 이용한다. 금리에 대한 매력이 없으니 금융회사를 찾을 이유가 없고, 금융회사 또한 미하일 씨를 적극적으로 유혹하지 않는다.
당초 유럽연합(EU)이 제로금리 정책을 도입한 이유는 시장에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다. 경제학 교과서대로라면 금리가 떨어지면 개인과 기업이 돈을 빌려 공장 등 생산시설이나 기술개발에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EU는 제로금리를 넘어 마이너스 금리까지 진행 중인데도 돈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있다. 투자 대상을 찾기도 쉽지 않고, 투자 수익률도 높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특히 부모 세대가 사회 보장과 고성장·고수익을 맛봤던 것에 비해 젊은 세대는 자산 형성에 어려움을 보이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는 분위기다. 영국 금융당국 FCA가 지난 5월 발간한 '세대 간 차이점'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내 1975~1995년의 투자수익은 연평균 6~10.5%였던 반면, 이후 20년인 1995~2015년에는 장기화된 저금리 기조로 인해 이 수치가 3.7~4.3%로 떨어졌다.
제로금리가 가장 오래된 일본은 '부(富)의 고령화'와 그로 인한 '돈맥경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저금리 시대 속 길을 잃은 유동자금이 급격한 고령화와 맞물려 60대 이상 노년층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다케하나 가쓰토시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제로금리 시대로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상황에서 가계 금융자산 중 약 3분의 2를 노년층이 갖고 있다"며 "이들이 저축만 선호하면서 막대한 자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행(BOJ)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일본 가계 총 금융자산 규모는 1860조엔(약 1경9880조원)에 달한다.
'잃어버린 20년' 전에 직장생활을 시작해 큰 어려움 없이 부를 축적하고 퇴직한 일본의 고령층은 자산을 은행에 모아 두는 성향이 특히 강하다. 일본 총무성에 따르면 60대 이상 퇴직 가구(2인 이상)의 저축성 자산 중 66%는 예·적금이다. 일본에서 자산 운용이나 자산 관리보다 '자산 형성'이라는 표현이 더 보편화돼 있는 이유다.
[특별취재팀 = 이승훈 차장(샌프란시스코·LA) / 김강래 기자(도쿄) / 정주원 기자(런던·암스테르담·바우트쇼텐) / 이새하 기자(스톡홀름·코펜하겐·헬싱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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