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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선 年-0.5% 대출도…부동산만 넘보고 예금·주식은 외면
입력 2019-12-22 17:56  | 수정 2019-12-22 23:14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번화가에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면적이 서울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암스테르담은 초저금리로 부동산 수요가 폭증하면서 올해 3분기 평균 집값이 50만유로(약 6억원)까지 치솟아 6년 만에 두 배를 기록했다. [암스테르담 = 정주원 기자]
◆ 2020신년기획 / 지구촌 제로금리 공습 ① ◆
세계 각국이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낮추기 경쟁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가 제로금리 공포에 휩싸여 있다. 제로금리는 한발 더 나아가 경제학 교과서에도 없는 마이너스 금리로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글로벌 마이너스 금리 채권 발행 잔액이 11조4100억달러(약 132조5000억원)에 달한다. 국내도 올해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내려 1.25% 수준까지 떨어뜨렸다. 내년에도 추가적인 금리 인하를 예상하는 시각이 많다. 전문가들은 기준금리가 1% 밑으로 떨어질 경우 사실상 제로금리에 진입했다고 본다. 제로금리는 국내 경제 전반에 기존 상식을 뒤엎는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미 제로금리 시대에 진입한 국가들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우리 경제의 미래를 5회에 걸쳐 진단해본다.
"여기도 투자할 곳은 가격이 치솟는 부동산밖에 없어요."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외곽 동남쪽, 대기업 건물이 모여 있는 베일메르메이르(Bijlmermeer) 지역에서 만난 직장인 미하일 씨(30)의 말이다. 그는 2015년 결혼하면서 은행 대출을 받아 25만8000유로(약 3억3400만원)에 샀던 집을 지난해 37만5000유로(약 4억9000만원) 넘는 가격에 팔고 이사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불과 3년 만에 1억5000만원 넘는 차익을 경험한 것이다. 그는 "주식은 리스크가 큰 데다 잘 알지도 못하고 금리가 낮은 은행 저축에는 관심이 없다"며 "실거주 주택이 유일한 투자처인 셈"이라고 말했다.
미하일 씨의 직장 동료이자 열 살, 여덟 살, 네 살배기 세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야니타 씨(40)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야니타 씨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집값이 떨어졌을 때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주택 두 채를 샀다가 이후 집값이 반등하면서 운 좋게도 모두 차익을 남기고 팔았던 경험이 있다. 지금은 아이들을 위해 암스테르담 시내의 큰 집으로 이사했다. 그는 "월 수입에서 절반은 세금으로 내고 주담대 이자와 생활비 등까지 충당하면 저축할 여력이 없다"며 "대출을 다 갚으면 아이들에게 이 집만큼은 물려줄 수 있을 것이란 게 유일한 노후 대비"라고 말했다.
더구나 네덜란드에선 부모가 만 18~40세 자녀의 주택 구매·개조나 주담대 상환 때 비과세로 증여할 수 있는 돈의 규모가 올해 10만2010유로(약 1억3200만원)까지 늘었다. 2011년 5만300유로의 두 배가 됐다. 네덜란드에서 공증 업무를 해온 마리아 씨(66)는 "최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현금을 상속·증여하기보다 집을 사주는 새로운 경향이 생겼다"며 "금리가 낮으니 현금보단 부동산이 낫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기화된 초저금리와 맞물려 빠르게 솟구치는 집값의 혜택을 맛본 유럽에서는 '부동산 불패' 기대감이 부풀고 있다. 그러나 가격 거품이 낄수록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네덜란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100%가 넘어 집 한 채를 살 때 내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전액 주택담보대출로 충당할 수 있다. 게다가 초저금리로 인해 10년 만기 주담대 이자율이 연 1.7% 수준으로 매우 낮다. 우리나라 경상도만 한 좁은 땅에 1720만 인구가 살고 있고 이주자도 많다 보니 주택 공급이 늘 부족해 집값이 오르기 좋은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 같은 부동산 거품은 네덜란드뿐 아니라 유럽 독일 뮌헨·프랑크푸르트,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 유럽의 주요 도시를 덮쳤다. UBS은행의 '부동산 버블 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오른 도시로 뮌헨, 토론토, 홍콩, 암스테르담 등을 꼽았다.
과도한 부채가 경기 침체의 뇌관이 될 우려도 있다. 딜로이트는 네덜란드와 덴마크의 부채 수준이 유럽 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다며 두 국가의 주택담보대출이 가계 가처분소득의 170%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 이승훈 차장(샌프란시스코·LA) / 김강래 기자(도쿄) / 정주원 기자(런던·암스테르담·바우트쇼텐) / 이새하 기자(스톡홀름·코펜하겐·헬싱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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