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연극 리뷰] `위대한 개츠비`, 나는 관객인가, 주연 배우인가
입력 2019-12-22 15:47  | 수정 2019-12-23 09:46
`위대한 개츠비` 극 중 파티에서 배우와 관객이 한데 어울려 춤추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당신이 없었더라도 내가 톰을 사랑한 적 없었다고는 말 못해요.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요."
지난 21일 오후 3시 그레뱅뮤지엄에서 열린 '위대한 개츠비' 첫 본 공연. 기자는 주인공 데이지 뷰캐넌 역을 맡은 김사라의 하이라이트 연기를 30cm 거리에서 봤다.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없는 그곳에서 그 순간 운 좋게도 그녀 곁에 서 있었던 덕분이었다. 제이 개츠비와 톰 뷰캐넌, 이 두 남자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데이지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표정 하나하나, 감정 하나하나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연극, 뮤지컬이 비싼 푯값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끄는 건 영화 속 스크린이 아니라 바로 내 눈 앞에 생생하게 존재하며 연기하는 배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소설이 모티브인 연극 '위대한 개츠비'는 이런 강점을 극대화했다. 관객이 연기를 감상할 뿐 아니라 극 속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이머시브 시어터'(관객 참여형 공연)다.
이머시브 시어터들 중에서도 이 작품은 관객과 거리가 매우 가깝다. 개츠비 저택에서 열린 파티에 초대된 손님으로서 관객들은 배우와 함께 어울려 춤출 수 있다. 이날 호응이 가장 높았던 것도 단연 무도회 신이다. 같이 춤추자고 손 내미는 배우들에 관객들은 맞잡으며 화답했다. 어떤 이들은 연극이 끝나고 나서도 흥이 가시지 않았는지 외투를 찾기 위해 기다리는 중에도 춤을 췄다.
각 배우들이 관객 일부를 스몰룸으로 초대해 자신들의 얘기를 펼치는 이벤트도 무도회 못지 않게 관객들이 열광한 대목이다. 친구들과 함께 온 김세영(30) 씨는 기자에게 "개츠비가 우리 세 명을 데려갔을 때 마치 '위대한 개츠비' 영화 속 주인공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자가 들어간 스몰룸에서는 '술병 돌리기 게임'이 벌어졌다. 병을 돌려 지목된 사람이 질문에 답하거나 아니면 배우들이 내는 미션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게임에서 관객들은 적극 참여하거나 박수를 치며 극을 즐겼다.

특히 이곳에는 한국 배우 오디션, 리허설 등을 함께하며 위대한 개츠비 한국어 라이선스 공연 제작에 기여한 에이미 번스 워커 협력연출도 자리해 배우들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워커 협력연출은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좋았다. 내가 기대한 그 이상이었다"며 만족을 표했다. 관객들의 찬사가 쏟아진 배우는 제이 개츠비를 연기한 박정복과 닉 캐러웨이를 맡은 이기현이다. 두 배우 모두 시끄러운 가운데서도 또렷하게 들리는 풍부한 성량이 호평 받았다.
프리뷰 공연에선 많은 인원 탓에 다소 어수선했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본 공연 때는 이를 상당 부분 해결한 듯 보였다. 관객들과 상호작용에 익숙해진 배우들이 능숙하게 극을 이끌어 간 덕택에 이날 기자가 인터뷰한 관객들은 모두 공연 진행에 흡족해 했다. 프리뷰 공연 후 한 공연 최대 객석 수가 150석으로 줄어 앞으론 더 쾌적하겠다. 내년 2월 28일까지.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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