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한파에 몸을 움츠렸던 한국영화가 기지개를 켠다. 배급사별 올해 최고 기대작이 연말에 쏟아지는 것이다. 한해를 마무리할 작품으로 무엇을 고를지 고뇌에 빠진 관객을 위해 K무비 대작 3편을 비교해봤다.
먼저 등판한 건 NEW다. 박정민, 정해인 주연 '시동'을 18일부터 극장에 걸었다. 이 영화는 갓 성인이 된 고택일(박정민)과 우상필(정해인)의 성장기다. 엄마 윤정혜(염정아)의 관심이 피곤해진 택일은 중국집 장풍반점에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가 주방장 거석이형(마동석)을 만나게 된다. 그가 거석이형에게 두드려 맞아가며 인생의 진리를 배우는 동안 친구 상필은 사채업에 뛰어들어 예상보다 평화적으로 돈을 받아내는 근무조건에 만족한다.
관람을 고민 중인 관객은 아마 '시동'이 얼마나 코믹한지가 궁금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꽤 웃기다. 어떤 배역을 맡겨도 본인 스타일로 소화하는 마동석이 인생 캐릭터를 하나 추가했다. '단발병 퇴치'에 특효가 있다는 거석이형 헤어스타일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악역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의 그것만큼 강렬하다. 무심한 듯 던지는 독설과 과장된 몸짓의 틈새에서 유머가 샘솟는다. 거석이형에 비해 두 주인공 캐릭터는 뚜렷이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총제작비 90억원에 손익분기점은 240만명.
백두산
CJ ENM은 재난물 카드를 내놨다. 19일 개봉한 이병헌·하정우 주연 '백두산'이다. 총제작비 300억원에 손익분기점이 730만명. 당연하게도 1000만 관객을 목표로 만들어진 영화다.재난영화로서 확실한 강점이 있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백두산을 폭발시킨다는 점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가 자주 걸려 넘어지는 신파의 덫을 걷어냈다. 백두산의 화산폭발로 한반도 곳곳이 무너지는 장면도 실감나게 처리했다. 여전히 할리우드 재난영화에 비해 컴퓨터그래픽(CG) 티가 조금씩 나긴 하지만 비교우위도 있다. 한국관객이 익숙히 아는 서울의 랜드마크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보다 피부에 와 닿는 공포를 구현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EOD 대위 조인창(하정우)이 이끄는 북한 침투 작전을 슈팅 게임처럼 전개한 점도 흥미롭다.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재원 리준평을 맡은 이병헌은 발군의 연기력을 뽐낸다. 남한 청년의 줄임말 문화를 배워서 아무 말이나 축약해버리는 썰렁한 개그를 하고 혼자 웃는 장면에서 내공이 전해진다. 이 외에도 스토리와 액션 등 각 요소에서 무리하지 않고 기성품 정장 같은 퀄리티를 뽑아냈다. 반면, 신파를 들어내면서 드라마까지 들어내 버린 듯 플롯이 성기다. 영화에선 감독의 개성이 확실하게 전달돼야 한다고 믿는 이에게도 심심하게 보일지 모르겠다.
천문
26일엔 롯데엔터테인먼트 '천문: 하늘에 묻는다'가 관객을 찾아온다. 관노로 태어나 종3품 대호군이 된 천재 과학자 장영실과 세종의 이야기를 담았다. 관전 포인트는 최민식이 재해석한 장영실. 과학과 발명에 빠진 외톨이 과학자 이미지 대신 강자 앞에서도 할 말은 하는 상남자로 그려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이미 세종을 연기한 바 있는 한석규는 '세종 경력직'다운 실력을 발휘한다.세종의 총애를 받던 장영실이 왜 조선사에서 갑작스레 자취를 감추게 됐는지가 이 영화가 캐려는 미스터리다. 잘 알려졌듯 장영실은 임금이 타던 안여(가마)가 부러지면서 곤장 80대형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데, 과연 그게 유일한 이유였겠냐는 질문이다. 이 영화의 중요한 장면은 주로 컴컴한 방안에서 촬영됐는데, 스스로의 시간도 문자도 갖지 못하는 조선의 암담한 상황을 은유한 것으로 보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빛나는 북극성을 바라보며 미래를 꿈꾸는 왕과 충신의 브로맨스를 부각했다. 다만, 장영실의 대부분 행동동기를 세종에 대한 흠모로 연결해버린 점이 간지러울 수 있다. 손익분기점 380만명.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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