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아세안 인프라 3740조인데…정부 지원없인 금융사에 `그림의 떡`
입력 2019-12-18 18:03 
우리나라가 아세안 국가와 금융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는 주한 아세안·인도대사 초청 만찬간담회가 지난 10월 은행회관에서 열렸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앞줄 왼쪽 일곱째),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여덟째)을 비롯해 국내 시중은행장과 각국 대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은행연합회]
◆ 신남방 금융한류 / '팀 코리아' 패키지 진출에 힘 실어야 ③ ◆
호주의 대표적 글로벌 투자금융(IB)인 맥쿼리그룹은 창립 50년 만에 33개국에 걸쳐 500조원을 넘는 자산을 운용할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했다. 인구가 2500만명에 불과한 작은 호주 시장을 일찌감치 박차고 나와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 전략을 구사한 덕분이다. 특히 맥쿼리는 1990년대 말 호주에서 경험했던 인프라스트럭처 민간투자 허용과 관련 투자 상품 개발 경험을 인도 진출 과정에서 적극 활용했다.
맥쿼리는 인도의 인프라 구축을 위한 마스터 플랜과 금융 조달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단순히 금융사로서가 아니라 인프라 컨설턴트로서 비금융 서비스를 먼저 제공한 셈이다. 물론 그 조언에는 호주 민간 건설사와 맥쿼리가 어떤 식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도 담겼다.
맥쿼리 사례를 연구했던 국내 금융지주사의 글로벌 담당 임원은 "한국은 호주 못지않게 인프라 건설과 금융에 있어 많은 경험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한국 금융사도 정부, 건설사 등과 협업해 해외 인프라 금융 기회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성장동력을 찾아 해외에 진출할 때 은행 등 민간 금융사뿐 아니라 외교, 인프라 건설, 수출 지원 등 다양한 분야가 조직적으로 움직여 힘을 합쳐야 한다는 데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특히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지역에는 2030년까지 3조3000억달러(약 3740조원)에 달하는 인프라 수요가 있을 것으로 전망돼 기회를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외국에 나가면 수많은 외국계 은행 중 하나일 뿐인 우리나라 은행이 현지 금융당국의 규제·소통장벽을 뛰어넘고 경쟁력을 갖추려면 각종 공적 지원과 민간 교류를 연계해 조직적으로 해당 국가를 파악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해외 진출 컨트롤타워인 국제협력기구(JICA)가 만들어진 바 있다. JICA는 일본의 유·무상 원조를 총괄하는 기관으로, 2008년 당시 기술 협력, 무상 원조, 유상 원조 등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던 기능을 일원화해 출범했다. 전 세계 160여 곳에 지점이 분포해 있어 진출 국가의 니즈를 파악하고 원하는 투자를 성사시키는 데 일조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를 들어 일본 최대 금융사인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이 2013년 태국 5대 은행인 아유타야은행(BAY)을 인수하는 과정에서도 정부의 후선 지원이 큰 힘을 발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남방의 자본 시장이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까지 발달하지 못했다는 점과 각종 규제·문화 차이를 고려하면 현지 감독당국과의 소통은 중요한 과제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으로서 현지 은행업 인가를 받으려면 부실 은행을 인수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는데, 해당 은행 회계가 불투명해 재무 상태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어렵사리 계약을 맺고 당국 인가 때문에 애를 태우는 경우도 있다. IBK기업은행은 2017년 인도네시아 진출을 공식 선언하고 현지 은행 두 곳을 인수하고도 2년 넘게 기다려 올해 9월에야 인도네시아 당국에서 은행업 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에 우리나라도 금융권의 신남방 국가 진출 허브 역할을 할 '한·아세안 금융협력센터'를 내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설립할 방침이다. 다만 관련 부처 간 줄다리기 끝에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채 첫발을 뗄 것으로 보여 벌써부터 제대로 된 역할을 할지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한·아세안 금융협력센터는 대통령 직속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주도로 논의가 시작돼 내년 중반께 자카르타에서 출범을 앞두고 있다. 신남방에 진출한 금융사의 애로 사항 등 현안 해결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현지 금융 제도·인프라 구축, 진출 민간기업의 금융 접근성 개선 등 금융 협력이 필요한 모든 문제를 원스톱으로 처리해준다는 개념이다. 자카르타의 협력센터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 이후 각 아세안 국가로 센터를 확장해 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초 장밋빛 청사진과 다르게 자체 사업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점이 한계로 꼽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센터의 관할 주무부처가 외교부로 결정되면서 예산·정책과 관련해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유관 부처의 실무 협조가 더욱 중요해졌다"며 "당초 계획한 신남방 인프라 금융에서의 '팀 코리아' 컨트롤타워 역할을 위해선 정식 출범 전보다 구체적인 협의와 전 정부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주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