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가계약금 5000만원 냈는데…대출 막혀 계약포기, 돈만 날려"
입력 2019-12-18 17:54 
지난 16일 정부가 기습적으로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본격 이사철을 앞둔 실수요자들의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계약한 집의 대출이 축소되거나 전면 금지되며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속출했다. 사진은 잠실 대표 단지인 엘스 아파트의 파인애플상가 안 중개업소. [한주형 기자]
◆ 12·16 부동산대책 부작용 ◆
집값을 잡겠다며 기습적으로 발표한 12·16 부동산대책에 선의의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우선 정부가 대출 규제 적용 예외 대상에 '가계약'(정식 계약 전 일부 금액을 먼저 납입하는 것)을 체결한 건은 포함하지 않기로 하면서 대출길이 막힌 실수요자들이 수천만 원에 달하는 가계약금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자녀 취학·전학을 고려해 이사를 준비하고 있던 학부모들도 갑자기 거래가 얼어붙으면서 매수·매도 시기를 맞추지 못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선 집단대출이 어려워진 조합원들이 꼼짝없이 거리에 나앉게 될 처지다. 정부가 이 같은 선의의 피해자들을 배려해 충분한 유예기간을 준 뒤 대책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8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12·16 대책이 발표된 이후 대출이 불가능해지면서 미리 가계약금을 납입하고도 정식 계약을 포기하는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 집값이 급등하고 거래가 활발했던 지역일수록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극심하다.
실제로 최근 송파구 잠실동에선 가계약금 5000만원을 입금하고도 계약을 포기한 사례까지 나왔다. 지난 17일 계약을 포기한 회사원 정 모씨(45)는 "이미 살던 집은 팔았고 마음에 드는 집에 많은 가계약금을 걸었는데 갑자기 대출이 막혔다고 해서 계약을 포기했다"며 "정부가 적어도 이미 진행 중인 계약은 마무리할 수 있게 가계약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보호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12·16 대책에는 15억원이 넘는 고가 아파트는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단 대책 발표일(16일)까지 계약 체결(계약금 납입)이 완료된 건은 기존대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한도(서울 등 투기지역은 4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계약서 작성 전에 계약금의 일부 금액을 우선 납입하는 가계약은 사적인 금융거래로 보고 실제 계약으로 인정하지 않아 적용 예외 대상이 되지 않는다. 문제는 법률적으로는 가계약금을 계약금과 같은 의미로 보기 때문에 계약 파기 시 매수자 계약금 전액 포기, 매도자 계약금 배액 배상 등 원칙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이다. 박일규 법무법인 조운 대표변호사는 "가계약의 경우 법률적으로 계약과 사실상 같은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가계약자까지 배려하는 편이 맞는다고 본다"며 "성급하게 대책을 내놓느라 피해 상황이나 부작용에 대한 검토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이사를 준비하고 있던 학부모들도 기습 규제에 신음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특히 살던 집을 팔기 전에 들어갈 집부터 매수한 경우엔 대출 규제로 집이 팔리지 않을 것이란 걱정 때문에 계약 파기까지 고려하는 학부모가 많다. 심지어 이미 산 집을 잔금도 치르기 전에 일정 금액의 손해를 보고 되팔려고 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집단대출이 막히면서 재개발·재건축 조합원들도 패닉에 빠진 모양새다. 15억원 초과 고가 아파트 대출 금지 규제가 재건축·재개발 주택에 대한 이주비 대출, 추가분담금 대출, 잔금 대출에 모두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달 말 입주자모집공고를 내는 강남구 개포프레지던스자이(개포주공4단지 재건축)가 대표적인 사례다. 개포4단지 조합에 따르면 전용면적 84㎡형 새 아파트 배정이 예정된 현 42㎡형 소유 조합원은 약 4억~5억원의 추가분담금이 필요하다.
이처럼 실수요자 피해가 커지면서 정부가 현재 진행 중인 계약 건들이 마무리될 때까지 일정 기간 정책 적용에 유예기간을 주는 게 맞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지성 기자 /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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