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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 은퇴’로 돌아본 2000년대 후반 KIA 파이어볼러 시대
입력 2019-12-17 06:16 
지난 13일 은퇴를 선언한 윤석민. 사진=MK스포츠 DB
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윤석민(33)의 은퇴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윤석민은 KIA타이거즈의 파이어볼러 시대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KIA는 지난 13일 윤석민의 은퇴를 발표했다. 2016년 시즌을 마치고 어깨에 웃자란 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윤석민은 최근까지 부활을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어깨 통증이 재발해 조기 귀국 하며 또다시 재활 단계로 돌아갔고, 끝내 부상을 이기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기로 했다.
사실 윤석민은 지난 5월에 은퇴 의사를 밝혔지만 구단의 만류에 다시 재활에 몰두했다. KIA 구단은 최대한 재활을 도우면서 윤석민의 부활을 끝까지 기다렸다. 내년 시즌 스프링캠프에도 윤석민의 자리가 있었지만, 어깨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윤석민은 은퇴를 결심한 뒤 마운드에 서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상적인 투구가 어려운 상황이다. 재활로 자리를 차지하기 보다 후배들에게 기회가 생길 수 있게 은퇴를 결심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2005년 2차 신인 1라운드에서 지명된 이후, KIA의 에이스로 시대를 풍미했던 윤석민의 퇴장이다.
10년 전으로 시계를 돌리면 윤석민은 KIA의 희망이었다. 10년 전 KIA에는 윤석민을 비롯, 150km 이상의 강속구를 던지는 20대 초중반 젊은 투수들이 즐비했다. 2006년 1차지명으로 입단한 한기주, 2005년 1차지명으로 입단한 곽정철과 이범석, 임준혁까지 KIA는 파이어볼러 시대를 열었다. 현재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자리잡은 양현종(31)은 2007년 2차 신인 1라운드에 지명돼 KIA에 입단한 막내급이었다. 당시 양현종도 최고 150km까지 찍히는 기대주였다.
하지만 양현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젠 그라운드를 떠난 상황이다. 윤석민과 더불어 KIA의 아픈 손가락 중 하나였던 한기주(32)는 지난 11월 은퇴를 선언했다. 한기주는 2006년 1차지명으로 입단할 당시 계약금 10억원으로 화제가 됐던 기대주다. 한기주는 데뷔 시즌인 2006년 10승을 기록한 뒤 2007년과 2008년 마무리투수로 2년 연속 20세이브 이상을 기록했다. 윤석민과 함께 2008 베이징올림픽 대표로 선발돼,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팔꿈치 수술 이후 내리막 길을 걸었다.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다가 결국 2018시즌을 앞두고 KIA를 떠나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그러나 한기주는 제 기량을 찾지 못했고, 결국 유니폼을 벗고 말았다. 곽정철도 잦은 부상에 신음하다가 지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해, 현재는 KIA 코치로 일하고 있다.
한때 KIA의 밝은 미래를 밝혔던 숱한 파이어볼러 중에 양현종만 건재한 셈이다. 윤석민, 한기주, 양현종 등의 입단후 KIA는 2009, 2017 통합우승을 차지하며 프로야구 명가의 전통을 이어갔지만, 2000년대 후반, 기대를 모았던 파이어볼러들이 건강히 함께 활약하는 장면은 보기 힘들었다. 윤석민의 은퇴는 KIA의 한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의미한다. jcan1231@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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