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구자경 LG 명예회장, 기업공개·고객중심경영…선진기업 도약 이끈 `재계의 혁신가`
입력 2019-12-14 14:15  | 수정 2019-12-14 16:10
1970년 LG그룹 회장 취임 당시 구자경 명예회장(서울=연합뉴스)

14일 별세한 고(故)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기업의 외형적 성장뿐만 아니라 선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며 '최초'의 역사를 써내려간 재계의 혁신가였다.
구 명예회장은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업공개를 단행해 기업을 자본시장으로 이끌어 내는데 역할을 하고, 민간 기업의 투명경영을 선도했다. 또 국내 최초로 해외 생산공장을 설립해 세계화를 주도했으며 물건을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시대였음에도 '고객 중심 경영'을 표방하고 회사의 경영이념을 고객가치 중심으로 재정립했다.
1970년대 당시만 해도 기업공개를 기업을 팔아넘기는 것으로 오해해 이를 우려하는 분위기였고, 일부 임원들은 기업공개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었다. 국내 민간기업 중에서는 기업공개를 한 사례가 없는 상황에서도 구 명예회장은 기업공개가 앞으로 거스를 수 없는 큰 흐름이 되고, 선진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구 명예회장은 1970년 2월 그룹의 모체인 락희화학을 민간 기업 최초로 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곧이어 전자업계 최초로 금성사가 상장하면서 주력기업을 모두 공개한 한국 최초의 그룹이 됐다. 이후 금성통신(1974년), 반도상사·금성전기(1976년), 금성계전(1978년), 럭키콘티넨탈카본(1979년) 등 10년간 10개 계열사의 기업공개를 단행해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

구 명예회장은 선제적으로 우리나라의 기업 영토를 세계로 확장시켰다. 그는 재임하는 동안에만 50여 개의 해외법인을 설립했다. 1982년에는 미국 알라바마주 헌츠빌에 컬러TV 생산공장을 세웠는데, 이 공장은 국내 기업이 해외에 설립한 첫 생산기지였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헌츠빌 공장에 대해 "한국의 기업이 미국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으며 하버드비즈니스스쿨에서는 성공적인 해외 진출 사례로 연구하기도 했다.
구 명예회장은 해외 투자에 멈추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독일 지멘스, 일본 히타치·후지전기·알프스전기, 미국 AT&T·칼텍스 등 세계적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한 합작 경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를 통해 선진 기술과 경영 시스템을 빠르게 습득하고 사업을 해외로 과감하게 확장했다. 그는 서로에게 합당한 원칙을 정하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상호 신뢰를 얻으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신념으로 분쟁 없이 다수의 합작법인을 운영해 국제적 모범을 보였다.
구 명예회장은 1990년 2월 '고객가치 경영'을 기업 활동의 핵심으로 삼은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 존중의 경영을 선포했다. 고객가치 경영은 당시 한국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었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막 주목받기 시작한 새로운 경영 조류였다. 구 명예회장은 고객가치 경영을 통해 기업 경영의 축을 공급자 중심에서 고객 중심으로 전환하는 혁신적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구 명예회장은 이같은 혁신 활동이 선언으로 그치지 않도록 직접 전도사 역할을 했다. 그는 일일이 임직원을 만나 경영 혁신의 필요성을 알리고 이해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2년에 걸쳐 그룹 전 임원 500여명과 오찬을 하고, 1년 만에 현장 임직원 간담회를 140여 차례나 가졌다.
구 명예회장은 임직원뿐만 아니라 고객의 목소리도 직접 들었다. LG전자의 서비스센터를 비롯해 당시 LG의 사업 분야에서 고객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달려갔다. 구 명예회장은 현장에 갈 때마다 "고객의 입장에서 듣고 생각하라. 이것이 혁신이다"라고 항상 강조했다.
그룹 안에서는 사내 문서 결재란에 '고객결재' 칸을 회장 결재 칸 위에 만들었으며 회의실마다 '고객의 자리'를 만들어놨다. 구 명예회장은 무슨 일을 하든 항상 고객을 먼저 생각하고, 고객의 의견을 가장 존중하겠다는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전경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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