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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가` 구자경 LG명예회장, 매출 1150배 키우며 `글로벌 LG` 도약
입력 2019-12-14 11:24  | 수정 2019-12-14 14:17
구자경 LG 명예회장 2012년 2월 충남 천안시 천안연암대학에서 열린 학위수여식에서 구자경 LG 명예회장(LG연암학원 이사장)이 졸업생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LG 제공]

강토소국 기술대국(疆土小國 技術大國, 국토는 작지만 기술 경쟁력이 뛰어난 나라), 전자·화학 강국의 기틀 마련···.
14일 일 별세한 고(故) 구자경 명예회장이 추구하던 철학과 그의 노력·경영성과, 한국산업에 대한 의미 등을 집약해 줄 수 있는 말들이다. 1950년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으로 LG맨의 길에 들어선 구 회장은 1970년부터 25년간 회장으로 그룹을 이끌며 기업의 비약적 발전을 이끌었고 이는 한국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구 명예회장이 그룹을 이끄는 25년간 매출은 260억원에서 30조원 대로 커졌고, 2만여명이던 직원은 10만여명으로 늘었다. 주력 사업인 화학·전자는 부품소재까지 영역을 확대하며 원천 기술력을 확보하고 수직계열화를 이루며 현재 'LG'의 기틀이 마련됐다. 강토소국 기술대국을 신념으로 여겼던 구 회장에게 가장 중요한 경영의 가치는 기술이었다. 그는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 '세계 최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배워야 한다',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친다' 등 기술에 믿음을 보여주는 많은 말들을 남겼다.
기술에 대한 신념은 국내에서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의미를 크게 깨닫지 못하던 1970년대 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구 명예회장의 회장 재임 기간 동안 만들어진 LG의 연구소가 70여개에 달한다. 1970년대 중반 럭키 울산·여천 공장이 가동되기 전부터 연구실을 만들었을 정도로 기술개발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그 중에서는 '국내 최초'의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것도 적지 않다. 1976년에는 금성자(현 LG전자)의 공장 별로 운영되던 소규모 공장으로는 종합적인 기술개발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민간기업 최초로 전사적 중앙연구소를 설립다. 이 연구소를 발전시키기 위해 당시로서는 고가의 첨단장비인 개발용 컴퓨터, 금속 현미경 등을 갖추고 우수 연구진도 초빙했다. 1974년에는 금성사에 디자인 연구소를 발족시켰고 1979년에는 대덕연구단지내의 첫 민간연구소인 럭키중앙연구소를 출범시키고 고분자·정밀화학 분야를 집중연구토록 했다. 1985년에는 국내 최초로 제품시험연구소를 개설해 가혹환경 시험실 등 16개 시험실을 갖추고 제품 테스트를 통해 금성사의 품질을 끌어올렸다. 또 같은해 금정정밀·전기·통신 등 7개사가 입주한 안양연구단지를 조성하기도 했다.

구 명예회장의 R&D 열정은 퇴임 때까지 이어져, 은퇴를 석달 앞둔 1994년 11월에는 나흘에 걸쳐 전국에 위치한 LG그룹 연구소 19개소를 일일이 찾아 둘러보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이 같은 R&D전통은 아들인 故구본무 회장, 손자인 구광모 회장으로 이어졌고 서울 마곡에 조성된 LG그룹의 연구단지인 'LG 사이언스파크'로 이어진다.
구 명예회장은 R&D 사랑은 전자와 화학 등을 LG그룹뿐 아니라 한국의 주력 사업으로 키우는 원동력이 됐다. 한국을 상징하는 'ICT 강국'의 뿌리가 여기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구 명예회장이 전력을 투구한 연구개발 덕분에 금성사는 19인치 컬러 TV, 공냉식 중앙집중 에어컨, 전자식 VCR, 프로젝션 TV, CD플레이어, 슬림형 냉장고 등 수많은 '국내 최초' 제품을 만들어내며 가전 강자의 모습을 갖췄다.
연구개발을 대량생산으로 연결짓는 '선제적 결단'도 구 명예회장의 경영특징 중 하나다. 컬러TV 생산은 1975년 구미 공단에 연산 50만 대의 대단위 TV 생산 공장이 준공되면서 본격화됐다. 구미 공장의 준공은 한국 전자산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국내 컬러 방송 시기가 미정이라 수요 예측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글로벌 기술 흐름에 뒤쳐지지 않고 해외 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전량을 미국 수출용으로 먼저 생산하기 시작했다. 구 명예회장은 구미 공장을 비롯해 현재 LG의 국내 주요 생산거점이 되고 있는 전자 및 화학 분야의 수많은 공장을 건설하는 데 박차를 가했다. 1975년 금성사 구미 TV생산공장에 이어 1976년에는 냉장고, 공조기, 세탁기, 엘리베이터, 컴프레서 등의 생산시설이 포함된 국내 최대의 종합 전자기기 공장인 창원공장을 건립했다. 1983년부터 1986년 말까지는 미래 첨단기술시대에 대비해 컴퓨터, VCR 등을 생산하는 평택공장을 구축하며 전자 산업 강국의 기틀을 닦았다.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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