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업소에서 "집 팔 생각 없느냐"고 전화로 묻는다. 팔 생각은 없지만 "얼마나 나가는데요?"하고 되물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2억쯤 더 부른다. 어깨가 으쓱해진다. 부자가 된 것같다. 그런데 옮겨가고 싶은 동네 같은 평수 아파트는 4억 더 올랐다. 옮겨 갈 가망은 제로에 가까와졌다. 그런들 뭐 어떤가. 집이 있고 억억하고 오르는데. 대관절 집 있으면서 이 정부 욕하는 인간들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위선 아닌지. 위선자는 강남 좌파가 아니라 강남 우파다.
초저금리 시대에 부동산은 거의 유일한 노후대책이 되어가고 있다. 집값이 이렇게 오르지 않았다면 대책이 서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정부는 국민연금 수익률을 올리는 대신 부동산 수익률을 올려서 국민들 노후를 책임지고 있다. 까짓 국민연금이야 아무려면 어떤가. 집만 들고 있으면 몇달 만에 20년치 연금 수령액이 떨어지는 판에. 정부도 이걸 알기 때문에 국민연금 개혁은 그저 시늉만 한다. 요즘은 아예 시늉도 안하고 있다.
정부는 다음주쯤 추가 부동산안정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이 정부 들어 발표된 부동산대책이 무려 17차례. 그때마다 집값은 뛰었다. 바로는 안 뛰어도 조금 있다보면 반드시 뛴다. 이렇게 확실한 신호를 주는데도 못 먹으면 바보다. 이번에 정부 발표가 나오면 집 사야 한다. 빚을 내서라도 사야 한다(기자가 아니라 집 가진 자로서 하는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가 서민 정부라고 생각한다. 글쎄 그런가. 한국갤럽 12월 첫째주 대통령 국정지지도 조사를 보자. 화이트칼라의 국정수행 긍정평가가 60%로 전 직업군을 통털어 가장 높다. 블루칼라는 48%다. 생활수준별로는 상/중상이 51%, 중이 53%다. 중하는 49%, 하는 29%다. 문재인 정부 주요 지지층은 화이트칼라 중산층인 것이다. 지역별로는 호남을 빼면 서울이 54% 지지율로 가장 높다. 무슨 얘기인가. 서울에서 집가진 화이트칼라 중산층이 문재인 정부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정부가 서울 집값을 잡을 것이라는 망상 따위는 버려야 한다. 지지층이 집가진 사람이고 그들이 집값이 올라 더욱 지지율이 올라갈텐데 그걸 왜 포기한단 말인가. 서민정부는 그저 코스프레만으로 충분하다.
이 정부가 집값을 잡는게 진짜 목표라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잘렸어도 몇번은 잘렸을 것이다. 그가 '고강도 대책' 으름장을 놓을때마다 집값은 뛰었으니 말이다. 세상을 단순하게 보는 사람들은 이런 국토부장관을 무능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정부 입장에선 김현미만큼 유능한 장관도 없을 것이다. 겉으로는 '집값 잡겠다'며 서민정부 코스프레, 실상은 집값 올려서 강남 지지층 결집. 집없는 서민은 정부 욕하는 대신 양극화 불만. '양극화 해소하려면 서민 정부에 힘 실어달라'. 꿩먹고 알먹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김현미 장관이 이낙연 총리 후임으로 계속 거론되는 까닭이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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