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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전으로 후퇴한 韓해외건설…올 수주 31% 줄어 185억弗
입력 2019-12-11 18:04  | 수정 2019-12-11 23:22
◆ 건설사 해외수주 최악 성적표 ◆
올해 한국 건설사의 국외 건설 수주액이 13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질 전망이다. 우리 건설사들 '텃밭'이던 중동 시장 침체가 두드러지면서 국외 수주액이 200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11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외 건설 수주액은 11일 기준 185억달러(약 22조298억원)로 집계됐다. 작년 같은 기간 268억달러보다 31% 줄어든 것이며, 2006년 165억달러를 수주한 이후 최저치다. 역대 가장 높은 수주액을 기록했던 2010년 716억달러와 비교하면 4분의 1에 불과하다. 올해 한국 건설업이 진출한 국가는 작년 106개에서 99개로 줄어들었고, 진출 업체도 지난해 386개보다 줄어든 370개에 그쳤다. 최초로 외국에 진출한 업체도 작년에는 50개였으나 올해는 36개에 머물렀다.
분위기가 이렇게 흐르는 동안 중국 건설업체들은 세계 각지에서 무섭게 약진하고 있다. 올해 8월 한국전력과 컨소시엄을 맺은 한국 대형 건설사는 미국 디벨로퍼와 손잡은 중국 업체와 두바이에서 큰 규모의 수주전을 벌였다가 결국 패했다. 수주전 패배에 대해 우리나라 건설 업계는 "예상했던 일"이란 반응을 보였다.
이미 일반시공 분야에서 '낮은 가격'을 무기로 치고 들어오는 중국을 막기 어렵다는 인식이 파다하다. A건설사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가격도 낮지만 기술력도 많이 좋아졌다"며 "결정적으로 중국 정부가 자국 업체의 해외 수주를 위해 눈치 안 보고 발 벗고 뛰고 있는데 우리처럼 천덕꾸러기 취급을 하는 나라의 업체가 어떻게 당해내겠느냐"고 반문했다.

국내 업체들의 해외 건설 산업이 선진국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가운데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06년 이후 해외 건설 수주액이 최저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특히나 수주 텃밭이었던 중동 지역에서의 수주액 감소세가 가파르다. 올해의 경우 이달 11일까지 수주 규모가 44억달러였는데, 이는 지난해 92억달러의 48%에 불과하다. 지금 분위기라면 2004년 35억달러 수주 이후 15년 만에 최저치 기록이 유력하다.
국내 분위기와 다르게 중국 업체들은 중동 지역에서 무섭게 떠올랐다. 세계적인 건설 전문지 ENR(Engineering News-Record)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2017년 중동 지역에서 112억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2위로 밀려났다. 대신 중국이 매출액 164억달러로 1위에 올라섰다. 2012년만 해도 한국 기업 매출액이 267억달러로 중국(93억달러)의 3배에 가까웠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이 업계에서는 천지개벽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지역을 들여다봐도 상황이 심각한 것은 마찬가지다. 중동에 이어 수주량을 책임졌던 아시아(중앙·동남아시아)에서도 현재까지 수주액이 108억달러에 그치며 지난해(162억달러)보다 33.3% 감소했다. 해외 건설 분위기가 좋았던 2013년(276억달러)과 비교하면 61%나 떨어졌다.
해외 건설이 위기에 빠진 이유는 시장 공략이 여전히 단순 시공 분야에 치우친 데다 중국 업체의 성장으로 가격경쟁력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의 수주 물량이 급감하면서 중앙·동남아시아 등에 대한 공략을 강화하고 있지만 여기마저 중국 업체의 도전이 거세다. 또 민관협력형(PPP) 사업이 아직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해 스페인 미국 등 글로벌 사업자와 경쟁하기가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게 흐른 데엔 복합적 원인이 작용했다. 우선 유가 하락으로 중동 지역 건설 발주량이 줄어든 외부 효과를 기본으로 2013년 한국 건설사들이 플랜트 및 해외 사업에서 부실 실적을 내면서 체질 개선 시기를 놓쳤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주요 건설사들은 2013년에만 해외 사업 부실로 1조원에 가까운 손실을 안기도 했다.
일각에선 우리 건설사들이 2010년대 중반 이후 호황을 누린 국내 주택 시장에만 집중하느라 수주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지난해 말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건설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2017년 9위에서 지난해 12위로 떨어졌다. 2011년 통계를 작성한 후 처음으로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이다. 한국은 특히 설계, 시공 등 전반적인 기술 분야에서 모두 10위권 밖인 것으로 평가됐다. 허경구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 사장은 "한국 건설사에서 해외 수주를 담당하던 인재풀이 급격히 좁아졌다"며 "외국 발주처에서 국내 기업에 연락하려고 해도 직원들이 모두 '물갈이'돼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털어놓았다.
여기에 정부가 민간기업을 충분히 북돋우지 못한 점도 겹쳤다. 투자 개발형 사업의 발굴부터 개발·금융 지원 등 전 단계를 지원하는 KIND가 설립된 지 1년6개월이 다 돼 가지만 아직 큰 성과가 없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은 "국책은행, 시중은행, 연기금 등이 해외 PPP사업 참여 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 금융과 건설이 연계될 수 있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도 뒤늦게 지원에 나섰지만 돌파구 마련은 요원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3~6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공항, 신도시 개발 등 국토교통 분야에 대한 정부 간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또 우리 기업이 수행하고 있는 주요 건설현장을 방문하고 현지 경제인 간담회를 열어 한국 기업인들을 격려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주택과 토목 산업 등 건설업을 압박하는 분위기에서 단기적인 격려 방문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미지수란 반응이다. 박동규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시공만이 아닌 엔지니어링, 설계 등 사업 다각화와 금융 지원 등을 계속해 나가야 해외 건설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손동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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