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1만7793건 손실 전무한데…은행서 ELT 팔지 말라니
입력 2019-11-27 17:56  | 수정 2019-11-27 20:12
주요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대규모 손실 사태 이후 금융당국이 은행 신탁 상품까지 판매 금지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신탁의 원금 손실 위험이 부풀려지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최근 4년간 은행이 판매한 공모·지수형 주가연계신탁(ELT) 상품 가운데 손실이 난 사례는 전무한 것으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오히려 안전성이 입증된 상품이 은행에서 판매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투자자들의 선택권을 저해하는 조치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은행들은 지수형 ELT의 과거 손실 사례와 투자자 보호 장치 등 자료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금융위는 여전히 ELT의 은행 판매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에서 2016년 1월부터 올해 10월까지 판매된 공모·지수형 ELT 1만7793건 가운데 손실이 난 상품은 0건인 것으로 조사됐다. 주가연계증권(ELS)·파생결합증권(DLS) 등의 발행 통계는 예탁결제원이 집계하고 있다.
이 기간 중 공모·지수형 ELT를 가장 많이 판매한 은행은 KB국민은행(5150건)이다. KEB하나(4890건) 우리(3336건) 신한(3156건) NH농협(1261건) 등이 뒤를 이었다. 전체 발행 규모는 155조3000억원 수준이었다.

이 같은 통계는 공모·지수형 ELT가 투자자들에게 그만큼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증권사들이 지난 수년간 기초자산 다변화 등 안정성을 강화하고자 자구 노력을 해온 결과"라고 말했다. 은행·증권사들은 금융위가 DLF 대규모 손실 사태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으면서 은행의 ELT 판매 중단을 검토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은행·증권사들은 거의 매일 금융위 관계자들과 만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
은행·증권사들은 지수형 ELT는 공모펀드에 준하는 투자자 보호 프로세스를 준수해왔고, 신탁은 대면 가입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펀드보다 더 엄격한 가입 프로세스를 지키고 있다며 항변하고 있다. 특히 금융위가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던 2014년 이후로는 공시가 완료된 뒤에만 판매하고 있어 공모펀드에 비해 투자자 보호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투자자 입장에서도 신탁은 은행·증권 간 직접 거래로 운용사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운용보수를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융위는 여전히 완강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모·지수형 ELT가 손실이 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안전한 상품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게 금융위 반응인 것으로 전해졌다. DLF 역시 확률적으로는 손실 가능성이 낮았지만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26일 경기도 파주 소재 핀테크 업체를 방문한 자리에서 "은행이 갑자기 DLF 대책 피해자처럼 나타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투자자 보호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으면 금융위가 기존 입장을 고수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KEB하나은행이 신탁으로 판매한 양매도 상장지수채권(ETN)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이 제재심의위원회를 28일 개최한다는 점도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KEB하나은행은 양매도 ETN과 관련해 불완전판매 사실이 다수 적발됐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KEB하나은행에 제재 조치가 내려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TN은 금융회사가 자기신용으로 특정 지수 변동에 따른 상환 금액을 보장하는 파생결합증권이다. 상장지수펀드(ETF)와 마찬가지로 거래소에 상장돼 사고팔 수 있다.
금융위는 DLF 재발 방지 대책과 관련해 당초 2주간의 의견 수렴 기간을 두기로 했지만 이 기간이 다소 길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당장 28일이 대책 발표 2주가 되는 시점이지만 은행·증권사들의 반발이 거센 상황이기 때문이다. 은 위원장은 이르면 다음주 시중 은행장들을 만나 DLF 재발 방지 대책을 비롯한 금융권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를 고려하면 대책이 확정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DLS와 ELS는 완전히 다른 상품으로 지수형 ELS는 시장에 선보인 지 20여 년이 지나면서 자정 과정을 거쳐왔다"며 "일자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판단에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용어 설명>
▷ 주가연계신탁(ELT) : 주가연계증권(ELS)을 특정 금전신탁 계좌에 편입해 판매하는 은행의 신탁상품을 말한다. 주가 지수가 일정 조건 내에서 움직이면 투자자가 수익을 얻지만 조건에서 벗어나면 원금 손실을 볼 위험이 있다.
[최승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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