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反정부시위`콜롬비아서 10대 시위대 끝내 사망 일파만파
입력 2019-11-26 16:31 
고등학교 졸업날인 26일(현지시간) 숨진 18세 시위대 딜란 학생의 죽음은 콜롬비아 시위대의 마음을 울렸다. 한 시민이 딜란 학생이 지난 23일 시위 당시 경찰 최루탄 통을 맞아 쓰러진 자리를 기념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BBC문도]

'중남미 경제4위' 콜롬비아에서 반정부 시위가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10대 시위대가 결국 사망하면서 정부에 대한 시민 반감이 더 거세지는 모양새다. 대통령이 '사회적 대화'에 나섰지만 학생·교사·원주민 등 시민들의 요구를 들어줄 지 여부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보니 청소년 시위대 사망이 오히려 시위를 더 키우는 것이 아니냐는 외신 예상이 따른다. 콜롬비아는 국내총생산(GDP)를 기준으로 중남미 경제 4위·인구 수 기준 중남미 3대 시장으로 꼽힌다.
26일(현지시간) 현지 신문 엘티엠포는 수도 보고타에서 평화 시위 도중 무장 경찰이 투척한 최루탄 깡통에 맞아 중상을 입은 18세 딜란 마우리시오 크루즈 메디나 학생이 이날 끝내 숨졌다고 전했다. 예정대로라면 딜란 학생은 26일에 보고타 소재 리카우르테 고등학교를 했어야 하는데 자신이 졸업하는 날 숨을 거뒀다. 앞서 23일 주말 평화 시위에 나섰던 마우리시오는 이날 최루탄 깡통에 머리를 다치는 바람에 병원으로 긴급 이송돼 산이그나시오 병원에서 치료받아왔다.
고등학교 졸업날인 26일(현지시간) 숨진 18세 시위대 딜란 학생의 인스타그램에 수많은 시민들이 애도의 뜻을 담은 글을 올렸다. 이날 이반 두케 대통령도 트위터 등을 통해 조의를 표했다. [사진 출처 = 딜란 학생 인스타그램·두케 대통령 트위터]
10대 시위대 사망 소식은 그간 정부의 '시위 과잉 진압'에 분노해 온 시민들을 자극할 만한 소식이다. BBC문도는 "딜란 학생이 콜롬비아 시위 상징이 될 것"이라면서 "저소득 가정에서 자라난 딜란의 희생은 라틴 대륙의 평범한 청년을 대표한다"고 26일 전했다.
시민 반발이 커질 것으로 보이자 26일 이반 두케 콜롬비아 대통령(민주중도당·43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청년 딜란 크루즈의 죽음에 우리는 깊은 애도를 표한다"면서 "딜란 아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딜란 누나와 여동생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두케 대통령은 또 "시위 진압 과정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신속·정확한 조사를 지시했다"고도 밝혔다. 앞서 무장 경찰은 지난 23일 수도 보고타 도심에서 국가를 부르며 평화롭게 시위하는 시민들에게 최루탄을 쏴가며 강제 해산시켰다.
콜롬비아에서는 11월 21일 부로 50여 곳 학생·교사 단체와 노동조합 등이 수도 보고타를 포함한 행정구역 32개 부서와 이에 속한 73개 시에서 1차 총파업 겸 시위에 돌입했다. 이어 25일에 주요 노조는 '반정부 시위'를 내건 2차 파업에 들어갔다. 이웃나라인 에콰도르와 칠레, 볼리비아에서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는 분위기 속에 두케 정부가 연금 수급 연령을 높이고, 청년층 최저 임금을 낮추는 식의 '노동 시장 유연화 개혁'을 단행할 것이라는 보도가 계속 나오면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21일 첫 대규모 파업·시위를 앞두고 지난 18일부터 군·경에 폭력 시위 진압권한을 승인하고 이후 보고타 일대 야간 통행금지·국경 폐쇄 조치에 들어가는 식으로 억누르기를 우선하자 시민들은 '반(反)정부'를 외치기 시작했다. 시위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26일 콜롬비아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1~23일 새 시위대 최소 351명과 경찰 182명이 다쳤고, 딜란 학생을 포함해 4명이 사망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거리에서 시위대가 `사회 불평등이야말로 그 어떤 시위보다 폭력적이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평화행진을 하고 있다. 이날 이후 대규모 파업과 시위가 이어지면서 지난 주말까지 시민 25만 여명이 `소득 불평등·노동 유연화 개혁` 반대 시위 대열에 합류했다. [사진 출...
이웃 나라에서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정권 최대 불안 요인으로 떠오른 것을 본 두케 대통령은 콜롬비아에서도 시위가 커지자 "내년 3월 15일까지 사회적 대화를 할 것"이라면서 "콜롬비아를 하나로 단결하는 것이 임무"라고 밝히고 24일부로 '사회적 대화'에 들어갔다. 이날 전국 주지사·시장들과 만나 '균형 잡힌 경제 성장·반(反)부패·교육 정책' 등 총 6가지 주제로 이야기한 후 25일 오후에는 기업인, 노동조합 관계자들과 만났다. 다만 정작 시민들과 어떻게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대한 사항은 지방자치단체장·기업인 등과의 대화 후순위로 밀렸다.
칠레와 마찬가지로 '시장 친화 경제'를 표방한 콜롬비아에서도 소득 불균형이 나라 차원의 리스크로 떠올랐다. 2018년 8월, 중도 우파 성향의 '40대 젊은 피' 두케 대통령이 취임해 정책을 이끄는 가운데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대통령 인기도 떨어지는 상황이다. 지난 10월 갤럽 조사에 따르면 두케 대통령 지지율은 임기 초 69%에서 26%로 곤두박질쳤다.
콜롬비아 통계청(DANE)에 따르면 새 대통령 집권 직전 연도인 2017년 빈곤율은 DANE가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2년(49.6%)이후 사상 최저치인 26.9%를 기록했지만 2018년 들어서면서 27%로 살짝 올랐다.
빈곤율이 0.1%포인트 오른 것은 작은 차이로 보일 수 있다. 다만 DANE에 따르면 지난 해 19만명이 '빈곤층'으로 진입한 반면 기존 빈민층 중 2만6000만명만이 가까스로 빈곤선을 벗어났다. 콜롬비아 매체 콜롬비아리포트에 따르면 2018년 콜롬비아에서는 최상위 부자 3명이 나라 GDP의 10%에 해당하는 부를 거머쥔 한편에서 어린이 346명이 굶어 죽었다. 세계은행이 낸 '2018 전세계불평등보고서'를 보면 콜롬비아에서는 2017년 통계를 기준으로 상위 10% 부유층이 버는 돈이 전국민이 버는 임금 총액의 39%에 달한다. 세계은행은 보고서를 통해 "지난 10년 간 콜롬비아에서 절대 빈곤은 줄어들었지만 빈곤 문제는 여전히 너무나 높다"고 진단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이후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일대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경찰이 물폭탄·최루탄을 사용해 진압에 나선 가운데 시위대가 `부패한 정부는 꺼져라`는 팻말을 들고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콜롬비아 디아리오데라레푸블리카]
가난의 그림자 속에 시작된 콜롬비아 시위는 반정부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부정부패 개혁을 비롯해 두케 정부 이전 정권이 맺은 '정부-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콜롬비아 최대 반군) 간 평화협정'을 두케 정부가 제대로 이행하라는 요구, 심각해지는 여성 폭력에 대해 정부가 대응하라는 주문 등이 그건 쌓여온 콜롬비아 시민들의 목소리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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