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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히어로즈는 ‘나쁜 X’들의 전성시대
입력 2019-11-08 05:01 
KBO의 금지어 이장석 전 히어로즈 대표. 사진=MK스포츠 DB
매경닷컴 MK스포츠 안준철 기자
이 정도면 진흙탕 싸움이다. 대주주는 구단 돈을 자기 호주머니처럼 쓰다가 감옥살이 중이다. 감옥에 간 대주주 대신 회사 경영 정상화를 위해 투입된 감시자는 구단 경영권을 장악하려 한다. 2019년 11월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바로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얘기다.
프리미어12에 출전하고 있는 한국 야구대표팀이 결전을 벌이는 서울 고척스카이돔 한켠에서는 잡음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의혹만으로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낸 감독과의 재계약을 하지 않고, 경영권 장악에 걸림돌이 되는 인사들을 옥중경영에 연루됐다는 혐의만으로 업무에서 배제하고 있다. 이 또한 히어로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7일 장정석 전 키움 감독은 기자단에게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전날(6일) 자신의 재계약 불발과 관련해 히어로즈 구단에서 밝힌 이유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내용은 정중했다. 히어로즈는 앞서 올해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끈 장정석 감독과의 재계약 대신 손혁 전 SK와이번스 투수 코치를 계약기간 2년에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애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은 인선에 대해 이장석 전 대표와 허민 이사회 의장 간의 파워게임 양상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장정석 감독은 횡령·배임 등으로 징역을 살고있는 이장석 전 대표의 측근으로 꼽힌다. 히어로즈 창단 이후 프런트로 일하면서 운영팀장까지 역임했고, 감독 선임 당시에도 깜짝 인사라는 평이 많았다.
장 전 감독 재계약 불발과 관련해 이런 저런 얘기가 돌자, 히어로즈는 6일 장정석 감독도 이장석 전 대표의 옥중경영과 관련됐다는 제보를 받았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고 밝히고, KBO에 이 전 대표 옥중경영과 관련한 경위서를 제출하겠다고 했다. 옥중경영에 연루됐다는 구체적인 의혹은 재계약 논의다. 인사권도 엄연한 경영권 행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정석 전 감독은 자신이 이장석 전 대표를 면회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재계약 얘기는 덕담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헤어지기 전 재계약은 걱정말라”고 한 것이었다. 상식적으로는 장 전 감독 말에 신빙성이 크다. 당시 동행한 구단 직원도 있고, 규정상 면회 시간이 길지 않다. 구체적인 재계약 논의가 오가기에는 5분 정도 가지고는 부족하다. 재계약 논의라고 하기에는 확대 해석에 가깝다. 더구나 히어로즈 측도 관련 녹취를 확보하지 못했다. 증거 없이 혐의만으로 기존 감독을 내친 모양새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 전 감독은 손혁 신임 감독에게 응원을 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예의를 갖췄다.
강판된 대주주와 구원투수 격인 이사회 의장 간의 본격적인 권력 다툼 양상이다. 허민 의장은 감옥에 간 이장석 전 대표를 대신해 히어로즈 정상화를 위해 선임됐다. 사내이사는 아니고 사외이사다. 허 의장은 과거 국내 최초 독립야구단인 고양 원더스를 운영한 바 있다. 소문난 야구광이고, 소셜커머스 위메프의 지주사 원더홀딩스 대표다.

장 전 감독 재계약 불발은 하송 대표이사가 주도했다. 하 대표이사는 지난달 말 새로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당시 한 매체의 보도로 박준상 전 대표이사와 구단 법률자문을 맡은 임상수 변호사가 이장석 전 대표의 옥중 경영에 관련됐다는 보도가 불거진 시점이었다. 하 대표이사는 허민 의장의 최측근이다. 고양 원더스 단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박준상 전 대표와 임상수 변호사는 이장석 전 대표 사람으로 분류된다. 이 전 대표는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영구실격 징계를 받았다. 히어로즈의 대주주이지만, 야구단 운영에 관여할 수 없다. 히어로즈 임직원들도 이 전 대표의 지시를 받을 수 없다. 박준상 전 대표와 임상수 변호사는 이런 점 때문에 구단 감사를 받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구단 감사는 하송 대표였다. 단장으로 들어왔다가 역시 논란에 휩싸여 부사장 역할만 해오던 임은주 부사장은 직무 정지 상태다.
당시 보도를 한 매체에서는 하송 대표, 즉 허민 의장 측의 늑장 감사를 지적했다. 이에 대해 히어로즈는 펄쩍 뛰었다. 늑장 감사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사실 확인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고, 가을야구에 진출한 팀의 사기 때문이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선택적 감사의 정황은 이번 장정석 전 감독 재계약 불발 과정에서 드러났다. 장 전 감독과 결별하는 과정은 신속했다. 일부에서는 이장석 전 대표의 옥중경영 논란을 허민 의장 쪽에서 적절히 잘 사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구단 주식이 없는 사외이사인 이사회 의장이 신임 감독 선임을 주도하는 게 정상적인 상황인지를 따지는 이들도 있다. 대주주가 야구계에서 퇴출된 상황이고, 감옥에 갇힌 상황이라 적극적인 경영권 행사를 하지 못하는 틈을 노려 경영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로 보는 이들이 많다. 애초 허 의장은 이 전 대표에 히어로즈 매각을 문의하기도 했다.
허민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 사진=MK스포츠 DB
허 의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좋게 말하면 기인이고, 돈키호테라고 한다. 야구를 너무 좋아해 미국에 가서 너클볼을 연마했고, 독립구단에서 데뷔하기도 했다. 다만 야구 하는 걸 너무 좋아하는 게 구설에 올랐다. 올 초 미국 스프링캠프에서는 연습경기에 자신이 직접 마운드에 올랐다. 2군인 고양 히어로즈 선수를 상대로도 너클볼을 던졌다. 과거 원더스를 운영할 때도 비슷한 일화가 있었다는 얘기도 돌았다.
이에 대해서 야구인들과 야구팬들은 곱지 않게 바라본다. 한 원로 야구인은 선수를 노리개로 삼았다. 장난감 취급을 했다”고 분개했다. 일부 야구팬들도 각자의 영역이 있다. 야구를 하고 싶으면, 사회인 야구팀에서 뛰어도 되는데, 너클볼을 던질 줄 안다고 이사회 의장이 일과 시간이 지난 뒤 선수를 상대로 공을 던지고, 치게 하는 건, 일종의 갑질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히어로즈는 나쁜 사람들의 전성시대인 것 같다. 대주주는 이미 횡령·배임으로 감옥에 들어가 있을 뿐만 아니라, 트레이드를 하면서 뒷돈을 챙긴 사실까지 드러났다. 경영진의 감시와 견제 역할을 맡은 이사회 의장은 구단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 감독과 수석코치 선임 등 주식 하나 없는 이사회 의장의 권한 행사치고는 과해 보인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히어로즈 정상화는 이장석 퇴출로 끝이 나지 않았다. 결국 피해는 선량한 직원들과 선수들이 보게 된다. 허민 이사회 의장 선임 후 히어로즈는 시끄러웠다. 임원이 늘어나면서 프로야구단 치고 직원 대비 임원이 많아 기형적인 구조라는 지적도 있었다. 구단을 생각하기 보다, 자기 밥그릇을 먼저 생각하는 임원들이 많다는 주장도 있다. 히어로즈 사정을 잘 아는 야구인은 이런 분위기라면 애꿎은 선수들만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선수들이 무슨 죄인가”라고 혀를 끌끌 찼다. jcan1231@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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