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20년 쥐띠해, 편리미엄·오팔세대 뜬다
입력 2019-10-24 14:55 

"'인싸템' 에어팟은 그냥 음악 듣는 도구가 아니다. 방패이자 가면이다. 에어팟을 귀에 꼽고 출근한 젊은 세대가 9시부터 회사원이 되기 전까지 8시55분에 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직장상사에게 인사할 이유는 없다. 9시에 에어팟을 빼는 순간, 직딩이 된다."
'트렌드 쪽집게'는 밀레니얼 세대에 주목하고 있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56)는 '요즘 애들'을 이해 못하는 부장님들에게 "밀레니얼 세대는 '멀티 페르소나'(다중 가면)를 가지고 회사안과 밖의 자아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라"고 충고했다.
2019년의 대세는 '뉴트로'였다. 김 교수와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가 작명한 이 단어는 올 한해 한국을 집어삼킨 키워드가 됐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 쥐띠해를 이끌 10대 트렌드를 점치면서 그는 'MIGHTY MICE'라는 키워드를 제시했다. 트렌드 예측서 '트렌드코리아 2020'(미래의창 펴냄)을 펴내며 24일 연 기자간담회에서 김 교수는 "'마이티 마우스'는 쥐가 빨간 망토를 두르고와서 악당을 물리치는 1990년대 방영된 만화에서 따왔다"면서 "꾀가 많고 영리한 영웅들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새롭게 떠오를 트렌드로 '편리미엄'과 '라스트핏''오팔세대''업글인간' 등의 신조어를 선보였다.
김 교수는 2020년 소비트렌드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세분화, 양면성, 성장을 꼽았다. 불황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면 무엇보다 고객을 잘게 나누어 그 속에 숨겨진 욕망들을 발견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우선 새 소비자 집단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에는 레고처럼 자신을 여러 자아로 조립하며 살아간다. 10대들이 인스타그램에 여러 계정을 파서,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현상도 그 일환이다. 직장인은 회사의 자아와 집의 자아가 다르다. 퇴근하고 서핑하는 회사원이 등장할 만큼 취미와 덕질이 무엇보다 중요한 세대가 등장했다.

'라스트핏 이코노미'는 상품의 가격과 품질이 아니라 어떻게 배송돼 마지막 접점을 만족시키는지가 상품의 선택 기준이 됐음을 시사한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킥보드나 따릉이를 타고 집으로 퇴근하고, 슬세권이란 말이 뜨면서 대형마트나 백화점 대신 편의점이 주목받는 것도 이런 트렌드에 따른 변화다.
사회, 직장, 가정에서 공정함에 목마른 세대의 등장으로 '페어 플레이어'가 중요해졌다. 김 교수는 "중간고사 대신 팀프로젝트를 하려고 했더니 100명 중에 100명이 반대하더라. 지금 청년들은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와서 공정하지 않은 환경에 반감이 크고 성과에 대한 보상도 중요하다. 대통령과 사회를 바꿔본 경험도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집도, 차도, 물건도 소유 대신 구독을 하고 경험하는 데 만족하는 '스트리밍 라이프'도 대세가 됐다. 김 교수는 "빌릴 수 있는 건 뭐든 빌리는 시대에 기업들이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해지가 쉬워 헤어질 때 편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조언했다.
'초개인화 기술'도 중요해진다. 일례로 아마존은 0.1명 규모로 세그먼트를 나눠서 소비자를 공략한다. 100명의 고객이 있으면 1000명의 시장이 있다. 현대인은 일관된 구매자가 아니라 맥락과 취향에 따라 다면적인 존재임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팬덤과 차원이 다른 소비자인 '팬슈머'(팬+컨슈머)도 등장했다.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소비자가 가장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요즘 아이돌은 팬들이 연습생 시절부터 투자하고 키우는 것이 한 예다. '프로듀스 101'의 순위 조작 사건이 파장이 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존의 차별화를 넘어 특화에 이른 제품이 살아남는다는 '특화생존'도 트렌드다. 니치(Nich)한 것이 리치(Rich)한 것이 된다. 그는 "'요가복의 샤넬'로 불리는 캐나다 기업 룰루레몬의 경영자가 꼽은 타겟고객은 '콘도회원권을 소유하고 여행과 운동을 좋아하는 32세 전문직 여성'으로 31세도 33세도 아니었다"면서 "타겟 고객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정밀해야 하는지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신중년층 '오팔세대'도 등장했다. 청년처럼 소비를 하는 소비자다. 엄마가 쓰던걸 물려받아 딸이 소비를 하던 시대가 아니라, 딸이 골라준 걸 어머니가 쓰는 시대다. 소비의 대올림이다. 중년 유튜버가 늘어난 것도, 당구장이 잘 되는 것도 '오팔세대' 덕이다.
가성비의 시대를 넘어, 시간과 노력을 아껴주는 편리성이 프리미엄이 되는 '편리미엄'의 시대가 됐다는 진단도 내놨다. 노력 대행 서비스의 발달, 간편 가정식(HMR)의 성공도 시간을 아껴주는 게 프리미엄이 된 시장을 보여준다.
마지막 키워드로는 '업글인간'을 꼽았다. 김 교수는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승진보다 성장을 중요시 한다. 52시간제 도입 이후 옛날 같으면 술집이 잘 됐을 것이지만, 이제는 집 근처 피트니스와 어학원이 잘된다. 내년에는 '개인적 성장'이란 단어가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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