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을 방문해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남측시설들을 남측과 합의하여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다고 북측 매체들이 23일 보도했다.
이날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측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금강산을 찾아 고성항과 해금강호텔, 온천빌리지, 제2온정각 등 남측이 건설한 시설들을 현지지도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11년째 관광이 중단된 남측 시설들을 둘러보고 '철거'를 전제로 한 남측과의 협의를 지시했다. 그는 "금강산의 자연경관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하여야 한다"며 남측과의 협력없이 금강산 관광지구를 독자개발할 뜻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남측 건물들에 대해 "민족성이라는것은 전혀 찾아볼수 없고 범벅식이다, 피해지역의 가설막이나 격리병동같다"며 "건축미학적으로 심히 낙후할뿐아니라 그것마저 관리가 되지 않아 남루하기 그지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손쉽게 관광지나 내주고 앉아서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하여 금강산이 10여 년 간 방치됐다"면서 "땅이 아깝다, 국력이 여릴(약할)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는 사실상 금강산 남북공동개발을 결정한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정을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측에서 최고지도자가 김일성·김정일 시기의 주요 결정을 '의존정책'이라고 치부하며 비판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날 김 위원장은 "지금 금강산이 마치 북과 남의 공유물처럼,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처럼 되여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관광도 하지 못하는것으로 되여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자신이 올해 신년사를 통해 '조건없이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가동을 재개하겠다'고 밝혔음에도 남측이 한·미 공조를 우선시하며 적극적인 후속 협의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언급으로 해석된다.
한편 이날 북측 매체 기사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보도된 사진에는 최근 넉 달 넘게 공개활동을 하지 않았던 김 위원장 부인 리설주 여사도 금강산에 동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위원장이 직접 나서 금강산 독자개발 방침을 밝히면서 조심스럽게 관광재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던 현대아산에는 비상이 걸렸다. 현대아산은 "관광재개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보도에 당혹스럽지만, 차분히 대응해 나가겠다"며 짤막하게 입장을 밝혔다. 현대아산이 그동안 금강산에 투자한 금액은 사업권 대가 5579억원과 시설투자 2258억 등 총 7670억원에 이른다. 외부투자 금액은 약 1812억원으로 추정된다.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지난 11년 간 현대아산이 입은 매출 손실은 1조 6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북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을 비판하면서도 의도와 배경에 대해서는 다소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선대의 협력사업을 계승발전시켜야 하는 현재의 지도자 임무에 어긋나고 연처 신년사에서 밝힌 '조건없는 재개'와도 모순된다"고 북측을 꼬집었다. 양 교수는 김 위원장의 발언에 "관광사업은 제재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과 제재를 하더라도 견딜수 있다는 자신감도 담겨있는 듯하다"면서도 "지나친 자신감이 개성공단의 독자개발로 나아간다면 남북협력사업은 설 땅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금강산관광 재개를 포함한 이산가족면회소 보수, 원산갈마와 금강산을 연계한 종합 레저타운건설 등 민족협력사업의 확대, 남북정상선언의 이행 등 전반적인 남북관계 문제를 점검하는 남북 고위급회담이 시급하다"며 필요하다면 남북이 특사단을 교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성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