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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금리의 공습 ③] 韓은행 수익, 이자 의존도 85%…제로금리땐 생존 장담못해
입력 2019-10-07 17:12  | 수정 2019-10-07 20:40
기준금리 0%가 고착화된 '제로금리 사회' 유럽에선 최근 4만여 명의 은행원이 일자리를 잃었거나 잃을 처지다. 초저금리 사회로 접어든 뒤 수익성에 치명타를 입고 고군분투해온 유럽 대형은행들이 결국 인원 감축을 포함한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전해진 소식은 독일 2대 은행 코메르츠방크의 구조조정안이다. 이 은행은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총 고용 인원의 10%인 4300명을 내보내고, 전체 영업점의 20%에 달하는 200개 지점을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6년부터 고강도 구조조정을 이어왔지만 유로존 재정위기, 지속되는 초저금리, 업계 경쟁 심화 등 악조건 속에서 정상화는 역부족이었다. 앞서 독일 내 1위 은행인 도이체방크는 직원 9만여 명 중 20%에 달하는 1만8000명을 해고하는 안을 발표했고, 그 밖에도 글로벌에 진출해 있는 HSBC, 소시에테제네랄 등 덩치 큰 유럽계 은행들이 일제히 인원 감축을 포함한 경영 개선 작업에 돌입했다.
이렇게 '제로금리'가 은행을 무너뜨리는 파급 효과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우리나라 은행권에도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최근 국내 주요 은행들이 이자이익에 기댄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덩치를 키워왔지만, 이자이익이 하락할 수밖에 없는 향후 저금리 기조에서 이 같은 실적 잔치는 '폭풍전야'일 뿐이란 불안감이 엄습해 있다.
불안감의 기저엔 은행의 전통적인 수익원인 예대마진 하락이 있다. 예대마진은 대출금리에서 예금금리를 뺀 값이다. 은행이 고객에게 예·적금을 받고 그 돈으로 대출을 해주면서 금리 차이에 의해 수입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 예대금리 차는 지난해 12월 2.31%포인트, 올해 3월 2.32%포인트에서 6월 2.28%포인트, 7월 2.24%포인트, 8월 2.21%포인트로 가파른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상·하반기에 걸쳐 1.67% 수준을 유지해온 은행권의 이자이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도 올해 상반기엔 1.61%로 0.06%포인트 떨어졌다. 앞서 구조조정을 겪고 있는 유럽권 은행들도 올해 1분기 NIM이 1.42%에 그쳐, 2014년 유럽중앙은행(ECB)이 마이너스 예치금리를 도입한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예대마진과 NIM 하락 현상은 저금리 전망에 따라 시중금리와 은행 대출금리가 잇달아 크게 하락한 영향이 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예금은행의 신규 기준 주택담보대출 가중평균금리는 2.47%로 전달 대비 0.17%포인트 하락했다. 통계가 쓰이기 시작한 2001년 9월 이후 사상 최저치다.
이병건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국내 기준금리 인하 전망에 더해 정부당국의 가산금리 통제, 금리인하요구권 확대 등도 대출금리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시장 전망대로) 10월 중 국내 기준금리 인하가 이뤄진다면 NIM 하락세는 내년 1분기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은행업권 안팎에선 수년 전부터 "이자이익 쏠림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비이자이익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돌파구는 요원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 총 이익 중 이자이익 비중은 지난해 87.8%에 달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여전히 높은 85.1%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비이자이익 비중이 10%대 초반에 머무는 데 반해 글로벌 은행은 지난해 기준 웰스파고 43%, 캐나다왕립은행(RBC) 54% 등으로 수익원을 다변화하고 있다. 문제는 앞서 유럽·일본 등의 사례를 보더라도 금리가 하락할수록 예대마진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 대형은행 관계자는 "아무리 기준금리가 낮아져도 예금금리를 0%나 마이너스 수준으로 내렸다간 고객들이 단숨에 돈을 인출해 다른 은행이나 현금금고에 넣어버리는 '뱅크런'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예금금리 하한은 막혀 있는데 대출금리는 밑으로 더 좁혀오니 이자이익 악화는 불 보듯 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당장 대응 여력이 있는 대형은행보다는 덩치가 작은 지방은행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많다. 일본에서도 마이너스 금리 도입 이후 은행 경영난은 지방은행부터 삼키고 있다. 일본감독청에 따르면 일본의 지방은행 106곳 중 50여 곳이 적자 상태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방은행은 수익성 지표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고, 생산성을 보여주는 1인당 영업이익도 정체 상태"라며 "지역경제 침체까지 불리한 여건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은행들도 핀테크 서비스 개발과 해외 영토 확장, 비이자 수입 확대 등 새로운 수익원 발굴에 나서고 있다.
임형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특히 은행들이 시장 변동성이 낮은 안정적인 수익처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은행은 비이자이익이 낮을 뿐 아니라 경기 상황에 민감한 수익 증권 판매나 방카슈랑스 등 업무 대행 수수료 비중이 높은 상황"이라며 "고령화에 따른 자산관리 수요 증대 상황 등을 감안해 수수료 수입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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