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히로히토 일왕, 패전 7년 뒤 재군비·개헌 필요성 언급했다
입력 2019-08-19 09:14  | 수정 2019-08-26 10:05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할 당시 항복을 선언했던 히로히토(裕仁·1901~1989년) 일왕이 패전 후 7년이 지난 시점에서 재군비와 개헌 필요성에 의욕을 보였다는 사실이 당시 일본 정부 인사의 기록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NHK는 어제(18일) 초대 궁내청(왕실 담당 부처) 장관 다지마 마치지가 히로히토 일왕과의 대화를 기록한 '배알기(拜謁記)'의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다지마는 1948년부터 5년간 궁내청 장관을 맡았는데, 배알기에 600회, 300시간에 걸쳐 히로히토 일왕과 나눈 대화를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일본의 전쟁 책임을 묻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조인 후 불과 5개월이 지난 1952년 2월 히로히토 일왕은 "헌법개정에 편승해 밖에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해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다른 부분은 다루지 않고 군비에 대해서만 공명정대하게 당당히 개정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같은 해 5월에는 "재군비에 의해 군벌이 다시 태두하는 것은 절대 싫지만, 침략을 받을 위협이 있는 이상 방위적인 새로운 군비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히로히토 일왕은 그 전인 같은 해 3월에도 "경찰도, 의사도, 병원도 없는 세상이 이상적이지만, 병이 있는 이상 의사가 필요하고 난폭자가 있는 이상 의사가 필요하다"면서 "침략이 없는 세상이면 무장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침략이 인간사회에 있는 이상 군대는 부득이하게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발언은 히로히토 일왕이 1948년 태평양전쟁 일본인 전범을 단죄한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전쟁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고 일왕의 자리를 유지한 뒤 불과 4년 뒤에 나왔습니다.

패전 후 점령국인 미국의 입김으로 '전쟁 포기'와 '전력(戰力) 보유 불가'가 명시된 헌법이 만들어졌지만, 히로히토 일왕은 일찌감치 이를 바꿀 의사를 갖고 있었던 겁니다.

'배알기'에 따르면 히로히토 일왕은 재군비와 헌법개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당시 총리에게 전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다지마 장관은 이에 대해 "헌법상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최근의 전쟁에서 일본은 침략자로 불렸다. 그건 금구(禁句·금지된 말)다"라고 말했습니다.

NHK의 이런 보도는 공교롭게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전후 첫 개헌을 통해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기하려고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나왔습니다. NHK는 아베 정권에 유리한 보도로 일관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임기 중 전쟁 포기와 전력 보유 불가가 명시된 헌법 9조(평화헌법 조항)에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개헌에 성공한 뒤, 9조의 기존 조항을 손보는 개헌을 다시 하는 '2단계 개헌'을 통해 일본을 '전쟁가능국'으로 변신시키려는 야심을 갖고 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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