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차렷·경례·18번·야채…곳곳에 남아있는 일제 흔적
입력 2019-08-16 15:16 
광복절인 지난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아베 규탄 범국민촛불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밝히며 `노(NO) 아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한 달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광복 74주년을 맞은 지난 15일 광복절에도 '반(反) 아베'를 외치는 시민들의 집회·행진이 곳곳에서 열렸다.
이날 오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는 '광복 74주년 일제 강제 동원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대회'가 열렸고, 같은날 오후 광화문광장에서는 '역사왜곡·경제침탈·평화위협 아베 규탄 및 정의 평화 실현을 위한 범국민 촛불 문화제'가 개최됐다. 주최 측 추산 10만여명의 시민이 운집해 촛불을 밝혔다. 서울 외에도 부산, 인천, 대전 등 전국 곳곳에서 아베 규탄 집회가 열려 시민들은 "아베정권 규탄한다", "친일적폐 청산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 처럼 일본과의 무역전쟁이 극일 운동으로 번지면서 일제 잔재 청산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 곳곳에는 일제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다.
◆ '차렷'과 '경례'…학교 안 일제 잔재
학교에는 일제강점기 문화와 친일파의 손길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우선 친일파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사용하는 학교가 상당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지난 2월 '친일파 작곡가의 교가가 남아있는 학교' 113곳을 발표했다. 그중 구로중학교가 지난 8일 처음으로 교가를 교체한다고 밝혔다. 구로중학교 기존 교가의 작곡가는 동요 '섬집아기', 군가 '진짜사나이'을 작곡한 이흥렬이다. 그는 일제 말기 군국 가요를 연주·반주·지휘했다는 이유로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구로중은 학생들의 정서와 달라진 학교 생활을 담아 교가를 만들 계획이다.
수업 전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차렷과 경례 역시 군대식 거식 경례로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바친다는 일제의 흔적이다. 경기도 교육청은 바른 자세·인사나 인사·안녕하세요로 바꾸도록 했다. 훈화는 일제 강점기 군대 용어로 감시와 통제를 위해 사용된 것으로 덕담이나 도움 말씀으로 대안이 제시됐다. 수학여행은 일제가 1907년부터 조선인 학생을 일본에 보내 일본 문화를 익혀 민족정신을 없애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졌다. 대안어로 문화탐방 또는 문화체험활동 등이 있다.
14일 전주 덕진구 여의동 주민센터에서 김승수 시장과 박병술 시의회 의장 등이 참가한 가운데 `여의동 선포식 및 현판 제막식`을 열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인사동, 통인동도 '창지개명(創地改名)'
일본식 지명을 고유지명으로 개선해야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일본은 1914년 4월 1일 한반도에 대한 행정구역 통폐합을 하면서 이른바 '창지개명'을 했다. 이때 고유지명이 일본식으로 바뀌었다. 우리 고유의 문화 거리로 유명한 '인사동'과 '통인동'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바뀐 이름이다. 관인방의 '인'자와 대사동의 '사'자를 합쳐 인사동, 기존 지명인 '통동'에 '인왕동'을 임의로 합성해 통인동으로 개편됐다.
땅이름학회 배우리 명예회장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인천 송도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참전했던 일본 군함 '마츠시마(松島)'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회나뭇골은 법을 집행하는 의금부가 있다고 해서 공평동(公平洞), 탑골(탑이 있는 동네)은 낙원동 등으로 바뀌었다. 한옥을 개조한 가게들로 북적이는 익선동은 일본이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익동과 정선방에서 한 글자씩을 따 만든 합성지명이다.
지난 14일 전북 전주시는 일제잔재로 알려진 '동산동'의 명칭을 '여의동'으로 바꾸었다. 지난 1914년 행정구역개편부터 사용되던 '동산'이라는 명칭은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의 창업자 호에서 딴 '동산 농사주식회사'에서 유래됐다. 전주시는 주민 찬반 설문조사와 시민 공모, 주민 투표, 명칭제정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여의동'으로 최종 결정했다.
◆ 야맹증, 십팔번, 급여…일상 속 일제잔재어
우리말과 글에 남아있는 일본어나 일본어식 표현을 바꾸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 '일제 잔재' 여부가 불확실하거나 잘못 알려진 언어도 있다. 대표적으로 '야채란 말은 일제 잔재고 채소로 써야한다'라는 주장이다. 일본어의 야채를 뜻하는 '야사이(やさい)'가 한국어의 야채와 같은 한자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야채는 일본식 한자어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야채와 채소 두 단어 모두 사용한 기록이 있다. 표준 국어 대사전은 채소와 야채 둘 다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다. 야채란 이름에 대한 불신은 일제의 잔재어가 우리 일상 속에 깊이 침투해 있음을 나타낸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민족 말살 정책으로 조선어 교육을 전면 금지하고 일본어를 상용화했다. 대부분의 사물과 개념들이 일본어로 불렸고, 이 영향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국립국어원이 공시한 '일본어 투 어휘 자료 구축'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야맹증은 우리나라에서 1930년대부터 용례가 보이는 말로 밤소경, 밤소경병으로 순화해야 한다. 십팔번은 일본의 유명한 가부키 집안에 전하여 오던 18번의 인기 연주 목록에서 온 말으로, '단골 노래', '단골 장기'로 순화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말에서 '봉급'이나 '월급'의 의미로 사용하는 '급여'는 1900년대 초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다.
[디지털뉴스국 유정화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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