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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개입 논란 줄여…연금 사회주의 해소
입력 2019-07-05 17:51  | 수정 2019-07-05 19:23
국민연금이 위탁주식 의결권을 위임하겠다고 밝히면서 정치적 판단이 줄어들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이 있는 반면, 의결권 불통일 행사 거부나 이해 상충 문제 등이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공청회를 열어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9월까지 최종 안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5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위원장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는 2019년도 제6차 회의를 개최하고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 관련 후속 조치와 국민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등을 보고받았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이나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고객이 맡긴 돈을 최선을 다해 운용해야 한다는 지침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고, 올해 상반기까지 의결권 행사 위임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과도한 경영 관여라는 기업 우려가 있어 적용은 기금운용위원회 위원들이 워크숍 형태로 논의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김 이사장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위임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이날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연금사회주의 비판에 대한 국민연금의 이번 결단에 환영한다"며 "위탁운용사도 기업의 중장기적 가치 제고를 위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의결권 행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협의회는 이어 "이번 소식으로 의결권 자문사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의결권 자문사는 정치적·여론적 판단보다는 객관성·공정성 확보를 위한 명확한 지침을 마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운용업계도 이를 환영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국민연금보다 직접 투자하는 운용사가 투자 기업에 대해 더 잘 아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런 점에서 운용사가 의결권을 위임받는 것이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볼 수 없고, 때로는 기업가치를 훼손시킬 수도 있다"며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인한 리스크를 분산한다는 점에서도 의결권 위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운용사에서 판단해 한 기업의 주식을 산 것인데 국민연금이 '쩐주'라는 이유로 의결권을 가져가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공모펀드도 운용사가 의결권을 직접 결정하지 자금 주체인 개인 고객들에게 물어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금 주체가 아닌 직접 투자하는 운용사가 의결권을 가져가야 정치적인 문제도 방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위탁 운용사가 투자한 기업 중 국민연금이 직접 의결권을 행사해 논란이 된 대표적인 사례는 한진칼이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말 기준 보유 중인 한진칼 지분 7.1%는 전량 위탁 투자분이었지만 국민연금은 지난 3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직접 행사해 조양호 전 한진 회장의 연임을 저지시켰다.
하지만 위탁 운용사가 위임받은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한다는 보장이 없고, 기업들이 여러 자산운용사를 상대해야 해 부담이 가중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금운용위원회는 이날 위탁운용사 선정·평가 시 가점 부여 방안과 관련해 국내 주식 위탁운용사를 고를 때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운용사에 가점을 주는 내용도 논의했다.
자산운용사 상당수가 그룹 계열사라는 점도 위탁 운용사의 의결권 행사에 한계가 될 수 있다. 같은 그룹사에 있는 기업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면 이해 상충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특정 그룹 소속인 자산운용사가 국민연금 기금을 위탁받아 그룹 내 기업 지분을 보유했을 때 의결권을 직접 행사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증권사 계열 운용사의 경우 해당 증권사와 거래가 많은 기업들은 이를 통해 위탁 운용사에 압력을 넣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 사립대 교수는 "특정 증권사가 어느 기업의 중요한 인수·합병(M&A)을 자문하고 있고, 같은 계열 운용사는 그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해당 운용사가 중립적 위치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의결권 불통일 행사 거부 문제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상법 제368조 2에 따르면 국민연금과 위탁운용사가 투자한 동일 기업 주총 안건에 관한 의견이 다르면 기업은 이를 거부할 수 있다. 즉 자산운용사가 국민연금과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자산운용사들끼리 다른 의견을 내면 기업은 이를 거부할 수 있다.
이날 국민연금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로 대표되는 사회책임투자(SRI)도 활성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9월까지 최종 안을 확정 지을 계획이다.
또 공공투자 관련 의견도 있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법상 국채이자율 이상 수익률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해 공공투자 관련 법 개정을 요구하는 의견을 위원 2명이 제시했다"고 말했다.
[정슬기 기자 / 박의명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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