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을 상대하는 등 스트레스가 심한 일을 하는 지구대 경찰관이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면, 휴식이 보장됐다고 해도 공무상 재해로 인정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오늘(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7부(노태악 부장판사)는 경찰관 A 씨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공무상 재해를 인정해달라"고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을 깨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A 씨는 2017년 지방 도시의 한 지구대에서 현장 업무를 수행하던 중 어지러움 증세를 호소해 뇌출혈 진단을 받았습니다.
공무원연금공단이 "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공무상 요양을 승인하지 않자 A 씨는 소송을 냈습니다.
1심은 "교대근무 사이 비번과 휴무 등으로 충분한 휴식을 취했고, 업무량이나 내용이 지나치게 과했던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며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A 씨는 일정한 기준에 따라 비번과 휴무를 대부분 보장받았고, 평균 근무시간도 대부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기준을 초과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법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야간근무에 대해 30%를 가산해 계산하더라도 A 씨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직전 6개월간 52시간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질병이 생겼거나 악화됐다고 봐야 한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A 씨의 구체적인 근무 내용과 그 특수성에 주목했습니다.
병을 얻은 당일 A 씨는 저녁에 가정폭력 신고를 처리한 뒤 음주단속을 했고, 자정 무렵에는 길을 잃은 초등학생들을 귀가시켰습니다.
이어 새벽 1시가 넘어 음식점에서 벌어진 주인과 손님의 싸움을 중재했습니다. 50분간 옥신각신하는 과정에서 손님 편을 든다고 불만스러워하는 업주와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새벽 2시 이후 한 주차장에 깨진 유리병 조각과 피가 있다는 신고를 받은 A 씨는 현장을 조사하다가 어지러움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재판부는 이런 과정을 되짚고는 "이런 사건들은 경찰관 야간근무 중 흔히 발생하는 일이긴 하다"면서도 "그러나 심야에 취객들이 다투는 현장에 출동해 50분간 머물다가 바로 다른 곳으로 출동해 깨진 유리병과 피가 있는 장소를 해결하는 일련의 업무는 고도의 정신적 긴장이 필요하고 높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처럼 흥분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예측하기 어려운 현장을 집중해 살피는 업무를 단지 근무시간 등 양적 기준으로만 환원해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교대제 근무,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라는 가중 요인에 복합적으로 노출되는 것으로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증가한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