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주하의 6월 10일 뉴스초점-한유총의 후안무치
입력 2019-06-10 20:12  | 수정 2019-06-10 20:52
'진화타겁지계'

불난 집에 들어가 휘젓는 등 적의 상태가 좋지 못할 때를 틈타 쳐들어가라는 삼국지 병법 중 하나입니다. 오월 동주 시대, 오나라가 천재지변을 당하자 겉으로 협력하는 듯했던 월나라가 이를 기회 삼아 오나라를 침공했다는 얘기에서 비롯됐죠.

좀 과한 비유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비정하면서도 치사한 계책을 쓰는 이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도 있지요. 한국유치원 총연합회. 지난해 사립유치원에 대한 각종 비리가 밝혀지면서 온 국민의 공분을 샀던 단체입니다. 결국 한유총의 설립 허가는 취소됐고 사립유치원 모두 국가관리 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을 도입하게 되면서 전쟁은 끝난 듯 보였습니다만, 말 그대로 2차전이 시작됐습니다.

지난달 한유총이 에듀파인을 강제로 사용하게 하는 게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며 행정소송을 냈거든요. 서울시교육청이 한유총 설립허가를 취소한 것도 정지해달라면서 말이죠. 법원의 결정에 따라 국회와 학부모들이 긴 시간 동안 애써온 게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원인은 국회 때문입니다. 지난해 국회가 유치원 3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지만 100일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논의되지 못했고, 아시다시피 지금도 유치원 3법은 물론 모든 법안을 논의조차 못 하는, 아니 안 하는 개점휴업 상태거든요.

한유총 입장에선 유치원 3법이 존재하는 걸 전제로 에듀파인을 수용하기로 한 건데 법이 없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진화타겁지계를 따라 그야말로 소신도, 체면도 없는 계책을 쓰고 있는 거죠.

사립유치원은 개인 소유라 할지라도 엄연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 시설이고, 유치원장은 아이들을 돌보는 교육자이자 어른입니다. 네 탓 내 탓하며 싸우기만 하는 국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런 틈을 타 자신들의 이익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한유총의 행태를 보니, 우리 사회의 소신과 체면은 다 어디로 간 건지 자라날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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