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재계 "지배구조 평가지표, 현실과 괴리"
입력 2019-06-04 17:43  | 수정 2019-06-04 19:46
올해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가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기업지배구조 보고서가 현행법보다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어 기업들에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투기자본 등 회사 외부 세력의 영향력을 키워줄 '집중투표제 실시 여부'도 상장사의 투명한 지배구조를 뜻하는 지표에 버젓이 포함돼 있어 상장사 입장에선 지키기 어려운 잣대라는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이 같은 내용을 공시해야 하는 상장사들은 주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매일경제신문이 지난 3일까지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공시한 코스피 상장사(161개사) 중 시가총액 상위 50개사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가장 준수하지 못한 핵심지표는 '주주' 관련 질문 중 '주주총회 4주 전에 소집공고 실시 여부' 항목이다. 이 질문에 대해 'O'(그렇다)라고 답한 상장사는 고작 6곳으로 이행률이 12%에 그쳤다.
상법상 주총 소집에 관해선 최소 2주 전에 주주들에게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관련 지표는 법보다도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배구조 투명성 관련 공시에서 1번부터 'X'를 유도하고 있어 김이 샜다"며 "도대체 '4주 전 소집공고'라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지배구조 관련 15개 지표 중 11개를 준수한다고 공시한 삼성전자조차 이 질문에는 'X'라고 답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4월 '상장회사 등의 주주총회 내실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주총 소집 통지 시한을 현행 '주총 전 2주'에서 '주총 전 4주'로 변경하기로 했다. 아직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도 못한 상황인데도 올해 주요 상장사의 지배구조 의무 공시 사항에 포함한 것이다. 법안 통과를 전제로 이 제도는 일러야 내년부터 시행이 가능할 전망이다. 한 상장사 관계자는 "기업의 지배구조 지표 이행률을 낮추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행률(지키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낮은 또 다른 지표는 이사회 관련 항목 중 '집중투표제 채택' 여부다. 집중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곳은 50곳 중 7곳(14%)에 그쳤다. 대주주를 견제하는 기능도 있지만 일부 투기자본이 소수 지분을 갖고도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어 재계에선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이처럼 기업 실정과 동떨어진 지배구조 지표가 다수 포함되면서 전체 이행률도 낮게 나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지배구조 보고서를 공시한 전체 161개사는 기업지배구조 핵심지표 15개 항목 중 평균 8.01개(53.4%)를 준수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문일호 기자 / 유준호 기자 / 정희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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