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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사는 이성우가 그리는 내일 “아빠, 야구선수야” [MK인터뷰]
입력 2019-06-02 05:55  | 수정 2019-06-02 13:42
이성우는 한 가지 바람을 이뤘다. 두 아들에게 아빠가 야구선수로 뛰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TV가 아니라 야구장에서 보여주고 싶은 마지막 바람이 있다. 사진=김재현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잠실) 이상철 기자
LG가 KBO리그 단독 3위에 오른 1일, 승장 류중일 감독과 승리투수 타일러 윌슨은 시즌 4번째 경기를 뛴 포수의 리드에 엄지를 들었다.
승리 하이파이브 후 더그아웃 벤치에 앉은 그의 얼굴은 땀범벅이었다. 인터뷰 요청에 그는 정중하게 앉아서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경기를 책임진 적이 언제였을까. 오랜만이었다. 서른여덟 살 포수는 모든 걸 쏟아냈다.
LG는 지난 1월 자유계약선수 이성우 영입을 발표했다. 선수로 더 뛰고 싶던 그의 역할은 백업 포수였다. LG에는 유강남, 정상호가 버티고 있다. ‘만에 하나를 위한 포수 보강이었다.
2군에 있던 이성우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지난 5월 28일이었다. 정상호가 가벼운 어깨 통증으로 빠졌다.
기회는 자주 주어지는 편이다. 1군 엔트리 등록 후 벌어진 5경기 중 4경기를 뛰었다. 선발 출전이 두 번이었다. 특히 1일 잠실 LG전에서 윌슨과 최고의 호흡을 맞추며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사실 주먹구구에 가까웠다. 이성우는 윌슨의 공을 경기 직전 처음 받았다. 그렇지만 풍부한 경험과 유연한 대응으로 투수를 편하게 해줬다.
이성우는 나 때문이 아니라 원래 LG 투수들이 잘한 거다. 지금도 좋은 흐름을 타고 있다”라며 경기 전 불펜에서 포구한 게 전부였다. 그동안 (유)강남이랑 짝을 이뤄 난 잘 몰랐다. 그러나 이닝을 마칠 때마다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윌슨이 하던 대로, 그리고 원하는 대로 해줬을 뿐이다”라고 겸손하게 밝혔다.

윌슨의 공은 변화가 심하다. 포수 입장에서도 포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성우는 SK 시절 상대했을 때 좋은 투수라고 느꼈다. 오늘 포수로 호흡을 맞췄는데 ‘이래서 윌슨, 윌슨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포수 입장에서 진짜 편하게 해주는 투수다”라고 말했다.
이성우의 피나는 노력도 있다. 그는 언제가 내 마지막 경기가 될지 모른다. 난 내일이 없다. 오늘만 사는 남자다”라고 강조한 뒤 몇 번이나 공을 빠트리는가 싶었다. 연승 중인데 백업포수의 결정적인 실수로 그르칠 수 있다. 짧은 순간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정말 긴장하고 집중했다”라고 전했다.
류 감독은 이성우의 활약에 흐뭇해했다. 포수 옵션이 많아진다는 건 팀 입장에서 긍정적인 요소다. 다만 이성우는 스스로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기한이 제한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정상호가 이탈하는 기간은 열흘이다. 곧 1군에 복귀할 예정이다.
이성우는 LG에 입단했을 때도 유강남, 정상호의 빈자리가 생겼을 때 메우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상호가 나보다 위라는 부정하지 않는다. 상호가 돌아올 때까지 버티자는 마음가짐이다. 타격도 잘하고 싶지만 수비라도 빈틈없이 해 보탬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포수 이성우(왼쪽)가 1일 KBO리그 잠실 NC전에서 LG의 5-1 승리를 이끈 후 투수 정우영(오른쪽)과 기뻐하고 있다. 이성우 합류 후 LG는 4승 1패를 기록하고 있다. 사진=김재현 기자
이성우는 욕심이 없다고 했다. 개인 기록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야구에 대한 열망이 없는 건 아니다.
이성우는 오랜만에 1군 무대를 다시 밟게 되니까 가슴이 뛰더라. 2군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더 야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내가 간절한 것 같다”라며 웃었다.
오늘만 사는 이성우에게도 그리고 싶은 내일이 한 가지 있다. 가족에게 ‘야구선수 이성우를 최대한 보여주는 것이다.
이성우는 아들이 둘 있다. 큰 애는 다섯 살, 작은 애는 19개월이다. 첫째는 아빠가 야구선수라는 걸 알지만 둘째는 잘 모른다. 2군에 있을 때 아내와 영상통화를 했다. 애들이 TV로 야구 경기를 보는데 왜 아빠가 안 나오냐고 하더라. 마음이 아팠다. 그때 ‘한 번은 1군에 올라가 아이들에게 마지막일지 모를 아빠의 경기를 보여주자는 꿈이 생겼다”라고 밝혔다.
이성우의 가족은 광주광역시에 거주하고 있다. 2년 전 트레이드로 광주를 떠났으나 그의 앞날이 불확실해 동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성우는 뿌듯하다. 최근에는 아빠가 야구선수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 활약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TV를 틀면, 많든 적든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이성우의 두 아들이다.
마지막 바람은 온 가족이 잠실구장을 방문한 가운데 아빠, 남편, 아들, 사위가 뛰는 걸 보이는 것이다.
이성우는 가족이 한 번도 잠실구장을 간 적이 없다. 내가 언제까지 1군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온 가족을 초청하려고 한다. 잘하든 못하든 선발이든 교체든 그저 경기 출전만으로도 다들 좋아한다. 그게 지금 내 마지막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rok1954@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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