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최고 무대에 세번째 러브콜…제 음악 지지받는 기분"
입력 2019-05-01 18:56  | 수정 2019-05-01 23:24
최고은의 목소리는 밀도가 높다. 듣는 이의 귓바퀴를 타고 들어온 그 저음은 가슴속에 부유하는 번민을 묶어 깊숙이 가라앉힌다. 밝고 명랑한 소녀 그룹이 점령한 한국 가요계에서 이토록 낮은 음색으로 노래하는 여성 가수는 희소하다. 관종(관심종자·관심을 갈구하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의 시대에 제 할 말만 묵묵히 읊조리는 그 목소리가 더 돋보이는 이유다. "예전엔 내 음역대와 상관없는 노래에 목소리를 맞췄는데 지금은 스스로 듣기에 좋은 노래를 부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 세 번째로 오르는 최고은을 서울시 자택에서 만났다. 매년 17만5000명이 찾는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은 세계 최고 야외 음악 축제로 꼽힌다. 그는 2014년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이곳에 올라 음악인들을 놀라게 했다. 이듬해 2년 연속으로 초청받아 전년의 초청이 '라인업 다양성 제고' 차원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이번에 가는 건 세 번째로 역시 한국 가요계에서 최초다.
"처음에는 글래스톤베리에 오르는 게 가수 인생의 완성인 줄 알았다. 내가 가는 음악의 완성형이 글래스톤베리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때는 무대에서 울었다. 두 번째로 갔을 때는 '내가 음악을 계속해도 되나 보다'라는 확인의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는 감사한 마음이 있다. 나는 청자가 좋아하게끔 친절한 음악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가도 된다고 서포트(지지)받는 기분이다."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지만 스스로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같은 단어에 별 감흥 없이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고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이도 바뀌었다. 공동체로서 국가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어렴풋한 상(像)을 잡게 됐다. 윤봉길 의사 종손 윤주빈 씨와 노래 '집으로'를 낸 것도 그 연장선상이다. 모 방송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특별기획 프로그램에 삽입된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이다. 그가 작사·작곡을 맡은 이 노래는 그저 집에 돌아가고 싶었던 독립유공자의 마음을 음유시처럼 잔잔하게 읽어낸다.
"요즘 인간존중과 생명존중, 이 두 단어에 꽂혀 있다. 그 고민을 풀어낼 기회라고 생각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됐다. 프로그램 마지막에 이육사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우리는 학교에서 이육사 시를 외우다시피 한 거였지 넓은 이야기를 듣진 못했다. 교과서를 통해 협소한 정보만 받아들이니 깊은 이야기는 알지 못했던 거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그래서 주빈 씨 이야기를 듣고, 날이 선 가사가 아니라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가사를 썼다."
'그린박스'에서 노래한 환경보호와 생명존중은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한 최고은의 집은 산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벌레가 집에 들어와도 잘 안 잡는다고 한다. "곤충들끼리 먹이사슬이 있어서 안 잡아도 된다. 바퀴벌레는 그리마가 잡아먹는다. 우리 집은 곤충이 지나가는 길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공격하려고 하는 애들은 없다. 곤충들이 나를 훨씬 무서워하지 않겠나."
6월 26일 열리는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3일 전 벨로주 홍대에서 '최고은, 글래스톤베리 출정식 그 세 번째 이야기'를 주제로 공연을 갖는다. 우리 전통가락을 어쿠스틱 사운드로 재해석한 '아리랑' '뱃노래' 등 자작곡 중심으로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예매는 멜론티켓.
[박창영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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