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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임신부 車사고 땐 정신적 피해까지 보상
입력 2019-04-08 17:27  | 수정 2019-04-08 19:36
금융당국이 자동차 사고를 당한 임신부에게 보험회사가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자동차 사고로 태아가 숨졌을 때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임신부에게 위자료를 주는 조항을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에 명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손해보험사가 임신부와 합의할 때 실무적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합의금에 반영할 수 있지만 표준약관엔 명시돼 있지 않다"며 "업계 의견을 들어본 뒤 이러한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표준약관이란 계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공통약관을 의미한다. 보험사는 표준약관에 따라 정해진 진료비와 위자료 등을 지급한다.
금융당국이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보험 계약 시 '약자'인 임신부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임신부는 사고를 당해도 약물 치료나 X선 검사 등 병원 치료를 제대로 받기 어려워 평균적인 사람보다 보험금을 적게 받을 수밖에 없다. 정신적 스트레스 위자료는 이 같은 보험금을 적게 받는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
자동차보험은 기본적으로 병원 진단서로 피해 정도를 증명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운 정신적 스트레스에 따른 위자료는 더욱 받기 어렵다. 정신과 진단서가 있더라도 보험사가 사고와 질병 간 인과관계를 따져서 보험금 지급을 결정한다. 한 손보사 관계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과 진단서를 갖고 오는 피해자도 가끔 있지만 보험금 지급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신 중 받은 스트레스가 태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엄마가 우울증을 앓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저체중아를 출산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일부 손보사에서 운전자나 배우자가 임신하거나 만 5세 이하 자녀가 있을 때 보험료를 3~5% 할인해주기도 하지만 별도 특약에 가입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태아 사망 시 보험금 지급을 어떻게 할지도 협의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우리나라 자동차보험에는 태아 보상 체계가 없다. 민법상 태아는 살아서 출생해야만 권리능력을 인정받는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사고를 당한 임신부가 출산한 신생아가 숨졌을 때는 인과관계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고로 배 속 태아가 죽으면 보상을 받지 못한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태아의 권리도 보호하는 쪽으로 상황이 바뀌고 있다. 대법원은 최근 태아가 상해보험 피보험자가 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놨다. 헌법상 생명권 주체가 되는 태아도 그 자체로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보험의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 2일 열린 보험사 감독업무 설명회에서 "태아도 생명체라 자동차 사고 발생 시 어느 정도 보상해주는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험업계에선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오르는 상황에서 보험료 인상 요인이 더해졌다고 우려한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85.9%(손해조사비 포함)에 이른다. 손해율이 높다는 건 가입자가 낸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이 많다는 의미다. 업계에선 자동차보험 적정 손해율을 80% 수준으로 본다. 손보사 이익도 자동차보험 손해율 상승 등으로 감소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손보사 순이익은 3조2373억원으로 전년 대비 17.8%(7019억원) 줄었다.
일각에서는 현재 보험사 재량이었던 임신부 위로금을 명문화해 보험사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보험사는 그동안 합의를 쉽게 하려고 임신부에게 약관에 없는 일정 금액 이상 합의금을 얹어 줬다. 손보사 고위 관계자는 "보험사로선 임신부에게 피해를 보상해주려고 해도 제도적인 장치가 없어 답답한 면이 있었다"며 "명확한 근거가 생기면 더 좋은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새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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