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세금 다 냈는데…매년 공시가 정정 수두룩
입력 2019-03-31 17:11  | 수정 2019-03-31 21:36
2012년 11월 30일. 정부 관보에 특이한 게시물이 하나 떴다. 무려 1168건이나 되는 수년 전 공동주택 공시가격(2005년에서 2012년 사이 공시가격)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으니 주택 소유주가 직접 확인하라는 공고였다. 1168건의 실수 중 아파트에서만 1067건이 나왔다. 최소 수백 명 주민들이 잘못된 공시가격을 기초로 매겨진 세금을 쭉 내고 있었던 것이다. 한 감정평가업계 관계자는 "오류 규모나 아파트에서 실수가 집중적으로 나온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한 아파트 단지의 일부 평형, 또는 일부 동호수의 공시가격이 통째로 틀렸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정부가 책정하는 표준단독주택·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세금 부과 기준이 되는 자료다. 세금 외에 61개 행정항목에도 쓰이는 만큼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고 민감하다. 그러나 잘못 계산된 공시가격이 몇 년이 지나도록 발견되지 않다가 '뒤늦게' 고쳐지는 사례가 매년 꾸준히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에 적용되는 공시가격이 급등하고 "산정과정을 공개하라"는 여론이 빗발치지만 정부는 줄곧 "공정하게 매겼으니 정부를 믿어라"는 해명이다.
그러나 길게는 5~10년 전 공시가격조차 '오류'가 발생해 뒤늦게 수정되고 수정된 가격마저도 공고만 달랑 띄우고 직접 확인하라는 정부의 무성의한 태도에 여론은 더 싸늘해지고 있다.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최근 표준단독주택 과거 공시가격 3건과 공동주택 과거 공시가격 10건을 정정하는 고시를 올렸다. 수정된 가격에 대해 이의가 있는 소유주는 23일까지 서면으로 이의를 신청할 수 있다.

표준단독주택 중에선 경남 김해시에 소재한 집의 2017년과 2018년 공시가격, 전남 고흥군에 있는 주택의 2018년 공시가격을 바로잡았다. 김해시 주택의 경우는 잇따른 개·보수 작업 때문에 층수가 4층에서 3층으로 줄고, 용적률이 감소한 사실이 밝혀졌다며 2017년은 5억6700만원에서 5억4900만원으로, 2018년은 6억1400만원에서 5억3100만원으로 가격을 깎아줬다.
공동주택의 과거 공시가격 실수는 다세대주택에서 10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국토부 공고에 따르면 부동산공시가격알리미나 주택 소재지, 해당 지자체로 수정된 가격 등이 통보될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동주택은 개인정보와 관련이 있어 소재지와 수정사항 등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국토부에 따르면 이 같은 사례는 공동주택의 경우 매년 적게는 수십 건, 많게는 수백 건씩 발생했다. 2012년 같은 1000건을 훌쩍 넘는 '특이 케이스'도 있었다.
해마다 발표되는 공시가격은 정부가 책정한 후 소유주의 이의신청을 받아 최종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몇 차례 '검증'도 불구하고 오류가 계속 나타난 셈이다.
현행 법령엔 이 같은 문제를 구제하기 위한 조항이 마련돼 있다. 부동산공시가격에 관한 법률 18조 7항과 시행령 47조엔 '주택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동·호수 및 층 등 주요 요인을 잘못 조사한 사실이 인정되면 지체 없이 정정해야 한다'는 규정이 마련돼 있다. 공동주택의 경우 공시가격이 처음 조사된 2005년 이후부터 이 조항의 효력이 인정된다.
정부에 따르면 공시가격이 잘못 계산된 이유는 건물 자체 속성을 잘못 파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물의 기본 정보인 연면적, 용적률·건폐율, 용도지역 등을 잘못 파악해 공시가격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국토부와 한국감정원 등은 "여러 이유로 건축물 상황이 바뀌었는데 건축물 대장 등에 반영되지 않았다가 뒤늦게 발견되는 사례가 많다"며 "우리가 조사를 하다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고, 집주인이 항의해 정부가 조사를 해서 인정받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개별 공시가 조사는 공무원 1명이 2만여 필지를, 공동주택은 한국감정원 직원 1명이 하루에 180가구를 조사하는 상황이다. 아무리 정확성을 기한다 해도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감정평가사가 공시가격을 조사할 때 연면적 등은 건축물 대장 등을 참고한다"며 "해당 문서가 틀리면 어쩔 수 없는 건데 건물 측량 등을 직접 할 수는 없지 않냐"고 해명했다.
중산층·서민들에게 민감한 세금 이슈에 대해 행정편의주의적으로 너무 가볍게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예를 들어 주택 소유주가 공시가격이 잘못 계산됐는지 모르고 세금을 모두 낸 후 이사를 가면 정정된 공시가격을 확인하기도 어렵다. 재산세 등을 환급받을 기회조차 날려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국토부는 "주로 집주인들이 이의를 제기한 건이기 때문에 본인들이 알고 있어 세금을 돌려받는 것"이라면서도 "지방세와 관련된 사항은 행정안전부 소관"이라고 해명했다.
[손동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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