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美코첼라·日서머소닉…글로벌 페스티벌 "K팝 아이돌 모셔라"
입력 2019-03-22 17:12  | 수정 2019-03-22 19:28
"제발 우리 축제 좀 띄워주세요."
한국 아이돌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주요 글로벌 축제 기획자들의 발도 바빠지고 있다. 페스티벌 흥행을 위해 K팝 그룹을 섭외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는 것이다. 그저 아티스트 구색을 맞추기 위한 차원으로 불러들이는 것을 넘어 '주요 라인업'으로 초대하고 있기에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다. 글로벌 음악 소비 양태가 디지털 위주로 굳어지는 가운데 한국 아이돌은 유독 실물 음반 판매와 관객 동원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어 'K팝 그룹 모시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 4월12·19일 무대…북미투어도
매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오 사막지대 코첼라 밸리에서 열리는 야외 록 페스티벌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은 북미에서 가장 뜨거운 음악 축제다. 매년 코첼라 시즌이 되면 주변 지역 호텔 숙박비는 폭등해 10여 명이 잘 수 있는 방은 1박에 3000달러(약 339만원)를 육박한다. 비욘세, 라디오 헤드, 레이디 가가 등 과거 라인업 면면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페스티벌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코첼라는 '디스 이즈 아메리카'로 빌보드를 휩쓴 차일디시 감비노, 수주째 멜론·지니뮤직 등 한국 팝 차트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는 아리아나 그란데, 천재 싱어송라이터 칼리드가 이름을 올리면서 페스티벌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코첼라가 예년보다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4월 12일과 19일 라인업 때문이다. 대세 걸그룹 블랙핑크가 양일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한국 가수로서는 2016년 에픽하이가 이 무대에 선 적이 있지만 K팝 아이돌 그룹이 공연하는 건 올해가 처음이다. 게다가 블랙핑크는 공연 주인공인 헤드라이너 바로 아래인 '서브 헤드라이너'로 이름을 올려 더욱 시선을 끈다. 티켓 구매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황선업 평론가는 "블랙핑크가 코첼라에서 서브 헤드라이너 격으로 이름을 올린 것은 북미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K팝 그룹 최초로 뮤직비디오 유튜브 재생 횟수 7억회를 돌파한 블랙핑크는 4월 북미 투어를 앞두고 있다.
◆ 日 데뷔 1년 만에 성과
오는 8월 개최되는 일본 최대 음악 축제 '서머소닉'에는 13인조 보이그룹 세븐틴이 출격한다. 오사카와 도쿄에서 동시에 열리는 이 페스티벌은 아시아 대표 음악 축제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건스 앤 로지스,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메탈리카, 린킨 파크, 콜드플레이를 비롯해 시대를 풍미한 밴드들이 이 축제를 빛냈다. K팝 스타들과도 인연이 깊은 축제다. 한국 아티스트로는 서태지를 필두로 빅뱅, 씨엘, 혁오, 보아, 소녀시대, 방탄소년단, 몬스타엑스가 이 페스티벌에 참여한 바 있다.
세븐틴은 지난해 5월 일본에 데뷔한 후 불과 1년 만에 서머소닉에 초대받으며 현지에서 빠르게 상승하는 인기를 입증했다. 일본 데뷔 앨범은 발매 첫 주 만에 12만장 넘게 팔렸고, 오리콘 차트에서 2018년 연간 인디즈 랭킹 앨범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최근 제33회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에서는 '뉴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와 '베스트3 뉴 아티스트'를 수상한 바 있다. 4월 코첼라를 뛰는 블랙핑크 또한 8월 서머소닉에 출연한다.
◆ 북미 최대 라디오쇼도 노크
랩에 강한 몬스타엑스는 힙합 본고장 북미 청자들을 완전 사로잡았다. 9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아이하트라디오(iHeartRadio) 뮤직 페스티벌'에 한국 가수로서 유일하게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 행사는 미국 유력 온라인 라디오 플랫폼 아이하트라디오가 매년 개최하는 페스티벌이다. 지난해엔 머라이어 캐리, 저스틴 팀버레이크, 이매진 드래건스, 차일디시 감비노 등 세계적 팝스타가 참여했다.
아이하트라디오가 몬스타엑스에 러브콜을 보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엔 자신들이 주최하는 미국 최대 연말 라디오 쇼 '징글볼' 투어에 한국 그룹으로는 처음으로 몬스타엑스를 초대했다. 미국 대도시를 순회하며 개최하는 이 쇼를 통해 몬스타엑스는 체인스모커스와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였으며, 12만 북미 팬과 만났다. 몬스타엑스는 다음달 13~14일 서울을 시작으로 18개 도시에서 19회 공연하는 '2019 몬스타엑스 월드투어-위 아 히어(We Are Here)'에 돌입한다.
◆ 탈(脫)소유시대 거스르는 K팝 아이돌
K팝 아이돌 그룹이 글로벌 축제 섭외 일순위 아티스트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글로벌 음악 소비 양태가 실물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가운데 한국 보이·걸그룹은 여전히 티켓과 CD 등 오프라인 상품에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CD와 레코드 등 실물 음반 판매는 줄어들고 있다. 버즈앵글뮤직에 따르면 미국 실물 음반 판매량은 2015년 1억128만장에서 2018년 7040만장으로 폭락했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2016년에서 2017년으로 넘어오는 동안 실물 음반 판매량은 유럽에서 7.4%, 중남미에서 41.5%, 아시아·오스트랄라시아에서 6.1% 줄었다(국제음반산업협회 자료).

반면 같은 기간 한국에서 팔려나간 실물 음반은 719만장에서 1933만장으로 2.7배가량 늘었다(가온차트 연간 판매량 1~100위 기준). 한국 음반 시장에서 탈동조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 '시장' 특성으로도 볼 수 있지만 K팝 아이돌 CD라는 '상품'의 특징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다른 국가에서도 한국 아이돌 그룹 음반 판매량만큼은 유독 증가하는 모습이 관측되기 때문이다.
버즈앵글뮤직이 발표한 2018년 미국 내 아티스트별 실물 음반 판매량 자료를 보면 방탄소년단은 60만3307장을 팔아 2위를 차지했다. 차트 1위 에미넴은 75만여 장을 팔았는데, 이는 2017년 1위 테일러 스위프트가 기록한 판매량 218만장의 3분의 1 수준에 머무른 것이다. 미국인들이 여타 실물 음반 판매는 줄이면서도 K팝 아이돌 음반은 구매하고 있다는 징표로 해석 가능하다. 정병욱 음악평론가는 "기존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권 국가에서 익숙했던 아이돌 소비 방식이 북미 현지에 통하고 있다고 본다"며 "미국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물리 음반과 기타 부가상품 판매 실적이 과거보다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장가치만 보고 CD를 열성적으로 구매하는 K팝 팬덤이 공연 티켓에 열의를 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블랙핑크는 최근 월드투어 예매에서 6개 도시 총 6만석을 매진시킨 뒤 2회 추가 공연을 확정했다. 방탄소년단이 5월에 시작하는 새 월드투어는 12회차 가운데 10회 차 티켓이 이미 다 팔렸다. 각종 글로벌 페스티벌에서 한국 아이돌 섭외에 공을 들이는 것은 결국 K팝 팬덤의 열성적 지지를 축제 흥행에 활용해보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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