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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 “‘우상’, 이창동 감독 이후 오랜만에 느낀 집요함” [M+인터뷰①]
입력 2019-03-18 13:47 
최근 설경구가 MBN스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CGV아트하우스
[MBN스타 김노을 기자] 집요함을 느끼고 싶었던 설경구에게 운명처럼 ‘우상이 찾아왔다. 연기란 간극을 좁혀나가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영화 ‘우상(이수진 감독)은 아들의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남자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쫓는 아버지 그리고 사건 당일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까지, 그들이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참혹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다. 설경구는 극 중 목숨보다 아끼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 유중식을 맡아 뜨겁게 연기했다.

이수진 감독은 문제의식을 담았던 전작 ‘한공주(2014)를 통해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호평 받았다. 자신만의 뚜렷한 시각을 이야기에 녹여내는 탁월한 연출력이 돋보였다. 이수진 감독과 만나고 싶었던 설경구에게 생각보다 빨리 기회가 왔다.

‘한공주를 잘 봤고, ‘우상 시나리오를 잘 봤다. 이수진 감독님, 한석규 선배님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닿았다. 집요함을 느끼고 싶었던 거다. 물론 이렇게까지 집요할 줄은 몰랐다.(웃음) 마지막으로 집요함을 느꼈던 건 이창동 감독님 때였는데, 이후 정말 오랜만에 그 감정을 느꼈다. 이수진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정말 촘촘하게 썼더라. 만약 어느 하나가 틀어지면 다음 것들이 연결이 되지 않게끔 말이다. 시나리오를 읽은 후 멍해졌고 강력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캐릭터들도 좋았다. 특히 련화(천우희 분)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최근 설경구가 MBN스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설경구가 연기한 중식은 주요 인물이지만 액션보다 리액션이 주를 이룬다. 그는 사건이 발생한 뒤 반응하고, 대립자 구명회(한석규 분)의 선택에 반응하는 등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적으로도 수동적인 건 아니다. 방법을 모를 뿐 내면에는 뜨거움과 처절함으로 가득하다. 때문에 설경구는 늘 독이 오른 채 촬영에 임했다.

리딩을 하는데 대사가 없더라. 명회나 련화가 돌파하는 캐릭터라면 중식은 자기 의지대로 하는 게 없다. 당사자이지만 정작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 사건에 대한 리액션을 해야 하고, 련화 일 때문에 명회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중식은 늘 절정에서 시작한다. 숨을 헐떡거리며 시작해 바로 터진다. 감정이 서서히 차오르지 않고 이미 독이 차있는 캐릭터라서 힘들었다. 쉬운 연기는 아니었다.”

극 중 중식의 시점은 아들 부남에서 련화로 이동한다. 아들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던 아버지가 핏줄이라는 우상을 택하는 순간이다. 후세라도 남기려는 중식은 처절하게 집착하고 이 집착은 안 좋은 방향으로 향한다. 진실을 앞에 두고도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그의 모습은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특히 남다른 부성애를 표현하기 위해서 연기 인생 최초로 탈색도 감행했다.

진실을 알고 싶어하던 중식은 태아 사진을 보고 핏줄쪽으로 선택을 튼다. 그때부터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되고, 자꾸만 잘못된 선택을 한다.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다. 중식 스스로가 ‘나만 속이면 된다고 생각한 채 해서는 안 될 일을 한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중식의 선택에 의아함을 느꼈다.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문제가 풀렸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더라. 중식은 일반적인, 상식적인 집착을 훌쩍 뛰어 넘는다. 정말 아픈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부성을 표현하기 위한 탈색도 좋았다. 머리카락이 상하는 건 나중 문제였다. 부자가 머리색까지 맞춘 것에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다.”

최근 설경구가 MBN스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설경구는 ‘우상을 통해 한석규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그는 지독할 만큼 집요했던 촬영장의 분위기를 편하게 해준 이가 바로 한석규라고 말한다. 함께 연기한 천우희도 인상적이었단다. 힘든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예민해지지 않고 여유로운 후배의 모습이 많은 걸 느끼게 했다.

‘우상 촬영장은 사실 부드러운 편은 아니었는데 (한)석규 형이 편하게 해줬다. 예민한 현장을 편안하게 해주는 힘이 있더라. 괜히 실없는 소리를 한 번씩 하면서 분위기를 풀어줬다. 그런 게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쉬운 부분이 아니다. 그렇게 해야겠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닌데, 참 대단하다. 석규 형과 붙는 장면이 많지는 않아서 아쉬움이 남기는 한다. 천우희는 굉장히 힘든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렇게 히죽이죽 잘 웃는지 모르겠다. 한 번은 왜 웃냐고 물으니 ‘그럼 웃지, 화내요?라고 하더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상적이다.”

아직 뚜껑을 열기 전이긴 하지만 ‘우상에 대한 호불호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감독을 비롯한 배우들도 이 부분을 진작 예상한 듯하다. 이에 대해 설경구는 관객들이 부디 편하게 영화를 즐겨주기를 바란다.

베를린 국제영화제 때부터 호불호를 예상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봤으면 좋겠다. 쉽게 접근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 세 인물이 한데 모이지 않고 각자의 길을 가기 때문에 셋 중 한 명을 선택해서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들은 서로 연관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기 때문에 억지로 셋의 이야기를 모으려면 헷갈릴 수 있다. 편히 즐겨주시기를 바란다.” / 김노을 기자 sunset@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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