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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외피를 입은 처절한 드라마 ‘우상’ [M+Moview]
입력 2019-03-18 13:46 
‘우상’ 포스터 사진=CGV아트하우스
[MBN스타 김노을 기자] ‘우상은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다. 이를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 느껴진다. 아쉬운 지점도 존재하지만 여러모로 반가운 영화다.

영화 ‘우상은 아들의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남자와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쫓는 아버지 그리고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까지, 그들이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었던 참혹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다. ‘한공주(2014)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수진 감독의 신작으로, 제69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에 초청됐다.

차기 도지사 후보인 구명회(한석규 분)는 아들이 낸 교통사고로 인해 정치 인생을 위협받는다. 하지만 절대 바닥으로 내려갈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폭주한다.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을 잃은 아버지 유중식(설경구 분)은 아들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지만 녹록지 않다. 설상가상 그날의 모든 걸 알고 있는 며느리 최련화(천우희 분)까지 감쪽같이 사라져버리고, 결국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흡인력을 가진다. 폭우가 내리는 도시 전경을 비추고 그 위로 유중식의 내레이션이 깔리는데, 그 내용이 심상치 않다. 곧이어 중식이 등장한다. 폭우가 내리는 날 트럭을 몰고 병원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이 롱 테이크로 담겼다. 중식이 아무리 트럭 앞유리를 와이퍼로 닦아내도 그 위로 쏟아지는 폭우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창밖은 잘 보이지도 않아 금방이라도 사고가 날 것만 같고 트럭 밖 세상은 가늠조차 안 된다. 이 답답한 장면은 곧 중식에게 닥칠 참혹한 현실의 복선이 된다.

‘우상 스틸컷 사진=CGV아트하우스

이처럼 실체를 알아볼 수 없는 장면은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불투명하거나 때가 낀 유리, 뿌연 안개, 사람의 형체를 흐트러뜨리는 물 등의 장치는 진실을 보지 못하는 인물들 그 자체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어리석음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이 장치들은 서스펜스를 높여 장르적으로도 크게 기능한다.

‘우상은 사건을 지체하지 않는다. 스릴러 외피를 취하고 있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사건 자체가 맥거핀이다. 사건이라는 허상을 따라가다간 길을 잃기 십상이다. 마찬가지로, 죽음의 실체를 숨기려고 하는 자와 이걸 막으려고 하는 자의 대립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각자의 우상에 함몰된 인간들이 어떻게든 그 우상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낼 뿐이다.

영화의 서사는 다소 불친절하나 어렵지는 않다. 전하려는 메시지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다만 수많은 은유들은 메시지를 위해 동원된 듯 느껴진다. 너무 많은 은유들이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어 간혹 피로도를 높이고 노골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렇게 차고 넘치는 은유들이 오히려 영화를 보는 이들의 사유를 차단해 아쉬움을 남긴다.

배우들의 연기는 흠 잡을 데 없다. 한석규 특유의 곧음은 자연스럽게 서늘함으로 연결된다. 구명회라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한 그의 속모를 표정은 그 어떤 풍부한 표정 연기보다 더 큰 잔상을 남긴다. 핏줄을 잃은 아버지를 품은 설경구의 연기는 처절하다. 근래 보았던 그의 연기 중 가장 인상적이다. 평범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련화를 연기한 천우희는 이번에도 발군이다. 오는 20일 개봉. 김노을 기자 sunset@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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