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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이수진 감독, 끝까지 파헤치고야 마는 집요함 [M+김노을의 디렉토리]
입력 2019-03-15 16:13 
영화 ‘우상’ 이수진 감독 사진=DB(이수진 감독)
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편집자주>

[MBN스타 김노을 기자] 한국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조리나 어두운 이면을 다루는 영화는 끊임없이 제작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치열하고 끈질긴, 집요한 연출자를 꼽으라면 이수진 감독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사회의 추악함에 가려진 진실을 파헤쳐온 이수진 감독이 ‘우상으로 돌아왔다. 2014년 개봉한 전작 ‘한공주에 이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작품이다. 꽤 오랜 시간에 걸쳐 그가 몰두한 주제가 고스란히 녹아있으며, 전작들과 궤를 함께 한다.

◇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다

이수진 감독은 지난 2007년 제작한 단편영화 ‘적의 사과로 제7회 미쟝센단편영화제 비정성시 부문에서 최우수작품상과 촬영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어느 여름날 막다른 골목, 대오에서 이탈한 노동자와 전투경찰이 대치하는 모습을 그린다. 두 인물은 입고 있는 옷에 따라 적으로 규정되며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이 놓인 상황은 블랙코미디가 된다.

영화 ‘적의 사과 사진=‘적의 사과 스틸컷

‘적의 사과 속 두 인물을 적으로 만든 건 결국 사회가 만들어낸 집단이다. 각 집단의 일원인 두 인물은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서로를 배척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정해진 목적을 향해 맹목적으로 돌진한다. 사실상 서로의 적은 서로가 아니라 위에 존재하는 누군가이지만 비슷한 위치에 놓인 이들은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야 만다. 이렇게 부딪치는 인물들 사이에서 생기는 마찰은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내고 이는 흉터가 된다.

이수진 감독은 ‘적의 사과 이전에도 단편영화 ‘아빠(2004), ‘아들의 것(2006)을 찍었다. 그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 속 고립된 이들의 침잠을 똑바로 응시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히 했다.

영화 ‘한공주 포스터 사진=무비꼴라쥬

◇ 잊혀져서는 안 되는 ‘한공주

이수진 감독이 ‘적의 사과 이후 6년여 만에 내놓은 영화는 ‘한공주(2013)다. 이 영화는 지난 2004년 경남 밀양 고등학생 44명이 울산 여중생을 지속적으로 집단 성폭행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홀로 상처를 감내하고 극복할 수밖에 없는 인물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공주들에게 뭉클한 메시지를 전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후 사건을 둘러싼 집단 구성원들의 반응, 대응 방식은 매우 폭력적이다. 그들의 눈초리를 이겨내야 하는 아이는 아직 충분히 강해지지 못했고, 강해질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들은 결론을 종용하며 또 다시 상처를 주고야 만다. 이 영화를 단순히 영화 혹은 허구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그것들이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수진 감독은 ‘한공주로 이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관객들은 깊은 여운을 느끼며 영화의 메시지를 찬찬히 곱씹어야 했다. 특히나 엔딩에 대한 해석은 다양했다. 한강을 헤매듯 헤엄치던 아이는 마침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열심히 헤엄치고 또 헤엄쳐 어딘가로 나아간다. 이는 인간을 바라보는 이수진 감독의 명확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긴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 ‘우상 포스터 사진=CGV아트하우스

◇ 인간의 추악함이 드러나는 ‘우상

이수진 감독의 집요함이 영화 ‘우상으로 나타났다. 모두가 피하고 싶어 하는 진실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후벼 파고야 마는 그의 연출이 빛을 발한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영화 ‘우상은 아들의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남자와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쫓는 아버지 그리고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까지, 그들이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한 참혹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다.

차기 도지사 후보이자 모두의 믿음을 얻고 싶었던 남자 구명회(한석규 분), 아들을 잃고 절망에 빠진 아버지 유중식(설경구 분), 중식의 아들의 사고날 감쪽같이 사라진 여인 최련화(천우희 분), 세 인물은 각자 자신의 우상에 함몰되어 진실을 보지 못한다. 이들이 지키고 싶은, 지켜야만 하는 대상이 우상으로 변하는 순간 모든 건 전복되고 순수한 믿음은 맹신이 되어 버린다.

이수진 감독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걸 봐왔다. 과연 그 시작은 어디인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 우리가 지키고 싶은 꿈이 맹목적으로 바뀌면 우상이 되는 것 같다”고 영화 기획의도를 밝혔다. ‘한공주 이후 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날 선 문제의식을 가진 그다.

각자의 우상으로 얽힌 인물들이 그려내는 처절한 지옥도. 이수진 감독은 관객들에게 다시 한번 물음을 던질 준비를 마쳤다. 김노을 기자 sunset@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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