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질투의 역사’ 공감하기 어려운 그들의 '질투'…마지막 장면이 살렸다
입력 2019-03-11 10:04  | 수정 2019-03-11 15:03
거울 보며 립스틱 바르는 수민/사진=네이버 영화

한 여성이 식당 바로 옆 기둥에 기대어 담배를 피운다. 이어 빨간 조명 아래,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거품 목욕을 하던 그녀는 고민에 빠진다. 투박한 가위로 검고 긴 생머리를 자른다. 검은 섀도우, 빨간 립스틱을 바르다 이내 자신을 비추던 거울을 깬다. 복도를 비틀비틀 걸으며 그녀는 말한다.

모든 건 질투 때문이었어.”

군산에서 재회한 주인공들/사진=네이버 영화

영화는 대학 시절 선후배 관계였던 다섯 명이 10년 만에 군산에서 재회하며 시작된다. 어쩐지 이들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 과거 연인이었던 원호(오지호 분)와 수민(남규리 분) 외 3명의 표정도 심상치 않다.

원호는 수민의 첫사랑이다. 수민은 노조 투쟁을 하다 구치소에 갇힌 원호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군산으로 거처를 옮길 만큼 그를 좋아한다. 그러나 시련이 닥친다. 원호가 교수의 추천으로 독일 유학을 떠나게 된 것. 수민은 옥바라지에 이어 원호의 유학까지 기다려주겠다고 말한다. 질투로 얼룩진 서사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공감하기 어려운 그들의 ‘질투…시사점을 던지다

수민을 따라오는 홍/사진=네이버 영화

원호가 귀국하기 직전 선기(조한선 분)와 홍(김승현 분)은 수민에게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은 질투에 기반하고 있었다. 사랑보단 욕망에 가까웠기에 표출 방식 또한 폭력적이었다. 수민에게 항변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민은 사랑을 가장한 질투에 의해 모든 것을 잃는다.

이에 대해 정 감독은 "감정에 따른 행동 방식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공동체 안에서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관객에게 시사점을 던진 셈이다.

마지막 장면이 다했다…관전 포인트는?

머리 자르는 수민/사진=네이버 영화

사실 영화 '질투의 역사'는 마지막 장면이 '킬링 포인트'다. 수민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머리를 짧게 자르는 장면은 질투로 얽힌 관계의 파국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수민은 자신의 머리를 네 갈래로 잡아 자르기 시작한다. 머리를 한 움큼 자를 때마다 수민은 질투라는 미명 하에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을 한 명씩 떠올린다.

머리를 자르고 짙은 화장을 한 수민. 입에 담배를 물고 비틀거리며 복도를 걷는 모습이 무척이나 위태로워 보인다. 그녀의 얼굴에 살짝 비치는 빛과 복도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명과 암을 이루며 분노의 깊이를 나타냈다.

그리곤 충격적인 결말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감독은 이 질문에 가장 공을 들였다고 밝혔다. 마지막 장면을 보며 해당 질문에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할까? 질투라는 감정이 당신의 마음에 어떤 동요를 일으킬까? 결국 관객 개인의 반응이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

원호와 수민/사진=네이버 영화

클리셰 "상처받고 성숙해진 여성"…주체성과 악랄함 구분해야

영화 끝에 망가질 대로 망가진 수민은 관객에게 묻는다.

너라면 어쩌겠니? 어떻게 살겠어? 지겹다.”

미안하지만, 여성은 시련을 겪어야 비로소 성숙해진다는 전개가 더 지겹다. 여성은 언제까지 남성에게 헌신하고 상처받아야 하나. 그리고 언제까지 망가진 모습을 성숙함으로 포장할 건가.

수민은 정말 헌신적인 여성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보호받은 적은 없다. 성폭력 당할 땐 원호가 옆에 없었다. 또한 원호는 수민과 헤어지고 난 뒤 '착한 수민이를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반전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에서 확인하자.

감독은 "수동적인 여성이 주체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민이 남성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나서야 주체적으로 변해가는 설정은 다소 거북하게 느껴진다. 주변 사람들의 잘못된 질투로 관계가 어그러지고 상처받는 건 당연한 게 아니다. 주체적인 것과 악랄해지는 것과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한편 영화 전반적으로 편집이 거칠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벅찰 정도였다. 장면 전환 몇 번 만에 원호가 유학을 하러 가고 돌아온다. 마치 드라마 10회를 영화 하나로 압축해 편집한 느낌이었다. 또한 인물간 관계 설정에 대한 설명도 부재하다. 고작 밥 한번 먹었다고 수민은 원호의 옥중생활을 기다려주겠다고 한다. 둘의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없어 공감하기 어려웠다.

영화 '질투의 역사' 시사회/사진=MBN

10년 만의 재회한 이들이 맞을 결말은 장담하건대 매우 짜릿하다. 마지막 장면을 위해 90분을 참아야 하는 영화 '질투의 역사'.

개봉은 3월 14일. 러닝타임은 94분.



[MBN뉴스센터 이지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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