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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자산 7조→48조` 신화…9년만에 떠나는 김한 JB금융 회장
입력 2019-03-05 17:46  | 수정 2019-03-05 23:22
김한 JB금융지주 회장이 최근 여의도 JB금융그룹 사옥에서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그동안의 소회와 한국의 금융사들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 대담=김대영 금융부장
'7조원에서 48조원으로.'
퇴임을 앞둔 김한 JB금융지주 회장(65)의 성적표다. 김 회장은 2010년 전북은행장에 취임한 이후 9년 동안 JB금융그룹을 자산 7조원(전북은행 기준)에서 48조원 규모의 은행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JB금융지주를 출범시키고 광주은행을 인수하며 호남지역 금융그룹의 기반을 다진 주인공이기도 하다.
JB금융그룹을 상승 궤도에 올려놓은 김 회장은 지주 회장 3연임에 도전하지 않고 용퇴를 선택했다. 예상을 벗어난 결정에 금융업계가 술렁거렸다.
김 회장은 최근 JB금융지주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선공후사(先公後私)'가 조부 때부터 내려오는 가훈"이라며 "'자산 50조원' 시대를 맞이해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회사를 위해 이제 자리를 새 인물에게 넘겨줄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삼양그룹 김연수 창업주의 손자이자 김상협 전 국무총리의 장남이다.
차기 JB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된 김기홍 JB자산운용 대표가 이달 말 주주총회를 거쳐 공식 취임하면 김 회장은 JB금융그룹을 떠나게 된다. 전북은행장 시절을 포함하면 9년간 머물던 조직과 작별을 하는 셈이다.
김 회장은 "김기홍 차기 회장은 은행과 지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JB금융의 다음 시대를 열어갈 적임자"라고 치켜세웠다.
퇴임을 앞뒀지만 김 회장은 지방은행을 넘어 우리나라 금융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피력했다. 김 회장은 "대한민국 금융 분야 인재들은 전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뛰어난 수준이지만 계속 '도토리 키재기'식 규제로 성장을 막다 보면 곧 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회장은 또 "지방은행이 무너지면 지역 사회가 무너진다고 생각해야 한다"며 "지방은행은 생존을 최우선 과제로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업계 최고경영자(CEO)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금융의 최고 자산"이라며 "후배들과 직원들만 믿고 달려라"고 말했다. 이하 김 회장과의 일문일답.

―왜 은퇴를 결정했나.
▷나의 조부와 부친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것보다 박수칠 때 내려오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 전북은행장을 포함해 JB금융그룹에 9년간 몸을 담았다. 그 정도면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JB금융의 제2 도약을 위해 후배들에게 물려줄 때가 됐다. '선공후사'가 집안 가훈이다. 나 자신을 넘어 회사를 위한 결정이었다.
―스스로 가장 잘 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처음 전북은행장을 맡았을 때 은행 자산규모가 7조원이었다. 그 수준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이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광주은행과 JB우리캐피탈을 인수했다. 특히 광주은행을 인수해야 전남과 전북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 두 은행 모두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자산규모가 48조원이다.
―지방은행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수도권 영업을 강화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처음에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과거에는 지방은행이 수도권 나가서 성공한 경우가 없었다. 수도권에 지점 몇 개를 설립하고 실적 부담 때문에 대기업에 리스크 있는 대출을 하다 보니 결국 부실화를 피하지 못했다. '수도권 나가면 망한다'는 인식이 지역 내 강한 이유다.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는 지방 돈 들고 나가서 수도권에서 잃고 오는 것이다.
―부정적인 인식을 어떻게 극복했나.
▷돈을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회수해 왔다. 그래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특히 시중은행의 손이 미처 닿지 않는 중소민들 소액 금융을 우리가 흡수했다. 틈새시장을 특화해 공략한 셈이다. 지금 정부의 뜻처럼 중소기업, 중소민들의 금융 사각지대를 없애는 효과도 있다. 이를 위해 '소형 점포 모델'로 승부를 봤다. 그전에는 지방은행들이 시중은행과 똑같이 했다. 그렇게 하면 100% 패할 수밖에 없다. 그 대신 우리는 4~5인 소형 점포로 운용해서 기회비용을 아꼈다. 일종의 기동타격대다.
―현재 수도권 지역 성적은 어떤가.
▷전북은행의 경우 수도권과 전라도의 수익 비율이 50대50이다. 과거에는 수도권 수익이 사실상 제로(0)에 가까웠다. 노조도 힘을 실어줬다. 4~5명 규모 점포면 사실 점심시간 교대도 힘들 때가 많다. 노조가 지역 은행 발전을 위해 결단을 내려준 것이다.
―외형 확장에 성공한 JB금융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자산 증가 속도가 매우 빨랐다. 지금은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시점이다. 지역의 경제 규모가 있으니 50조원에서 자산을 빠르게 늘리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다른 지방은행을 쫓아가려고 하면 안 된다. 각자의 지역 기반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역 은행이 무너지면 지역 사회가 무너진다. 살아남는 게 우리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
―후임자로 김기홍 대표가 내정됐다.
▷김 대표를 KB국민은행 수석부행장 시절부터 봐 왔다. 국민은행 지주회사설립기획단 기획단장도 지냈기 때문에 은행과 지주 업무 이해도가 높다. 금융감독원에서도 경력을 쌓았으니 금융업 전반의 전문성도 겸비했다. 개인적으로 김 대표가 JB자산운용에서 최고의 실적을 내는 것을 보고 차기 회장으로서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다음 도약을 위한 새로운 성장 동력은 무엇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디지털이다. JB금융지주도 '무인점포'를 운영할 수 있을 정도의 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다만 지방은행 특성상 무인점포를 전면 구현하기는 어렵다. 지역에 기계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분들에게도 지방은행은 어떤 형식으로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지역의 금융 사각지대를 만들 수는 없다. 따라서 현재 노년층이 오면 우대를 해주고 전용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어르신 점포'도 구상 중이다.
―해외 시장 진출도 금융권 화두다. '금융 한류'를 위한 복안이 있나.
▷단기적으로는 동남아시아 진출이 중요하다.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은 계속 성장할 시장이다. 장기적으로 대형 금융사들은 중동으로 가야 한다. 이슬람권 지역은 우리나라에 우호적이라 '금융 한류'를 꽃피울 만한 곳이다. 전북은행도 캄보디아 은행을 인수해서 좋은 실적을 내고 있다. 1년 수익이 150억원 정도다. 앞으로는 200억원, 300억원까지 달성할 전망이다. 광주은행도 외국 자회사를 편입해야 한다. 그동안 여러 검토를 해왔고,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제언을 해달라.
▷해외를 나가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금융 지능'이 글로벌 수준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금융에 실력이 있는 거다. '도토리 키재기'식 규제 때문에 성장을 못 하는 것이다. 포지티브(Positive) 법 체계가 문제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금융을 선도하기 위해서 적합하지 않은 법 체계다. 이런 구조라면 규제 샌드박스 등 혁신의 드라이브도 획기적인 효과를 내기 어렵다. 국민적 합의를 통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조금 더 늦으면 경쟁력을 잃게 된다.
―금융의 성장을 가로막는 법은 뭔가.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가 '규제왕국'이 되고 있다. 특히 개인정보보호법이 너무 강해서 금융사들과 기업들이 빅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개인 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은 누구도 이견이 없을 거다. 하지만 시행착오 없는 성장은 없다. 구글 클라우드를 사용하는데 구글을 못 믿으면 되겠는가. 지금은 금융사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정말 빅데이터 산업을 키우려면 데이터를 사고팔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날개를 달 것이다.
―은행, 보험, 증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업무를 맡아왔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금융의 신뢰는 리스크 관리에서 나온다. 최적의 모델은 안정된 수익을 오랜 기간 유지하는 것이다. 은행은 고객의 돈을 받아 사업을 하니 공적 성격이 강하다. 아울러 금융업에서 최고 자산은 사람이다. 나 또한 9년 동안 직원들만 믿고 달려왔다. JB우리캐피탈을 인수했을 때도 외부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우리가 인수하지 않으면 6개월 내 해체될 거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직원들이 발로 뛰어 지금의 JB우리캐피탈을 만들어냈다. 그런 의미에서 직원들의 역량을 믿고 자율권을 줘야 한다. 그동안 회장을 하면서 정기 임원회의를 해본 적이 없다. 윗사람이 관여 안 해도 시스템으로 돌아가게 돼 있다. 그 대신 안 풀리는 일을 해결해주는 게 CEO의 역할이다.
"이제부터 제2의 인생…첫 목표는 히말라야"
김한 JB금융지주 회장이 퇴임 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히말라야 등정이다.
김 회장은 "평소 등산을 좋아해 히말라야에 가보고 싶었다"며 "내년에 가려고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정상까지 오를 것인가'란 질문에 소리 내어 웃으며 "아마 베이스캠프 정도 가보지 않겠는가"라며 "그래도 아직 젊으니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JB금융지주를 떠나면 당분간 '제2의 인생'을 만끽하겠다는 생각이다. 김 회장은 "평소 읽고 싶었던 책도 쉬면서 맘껏 읽고 싶다"며 "특히 4차 산업혁명 분야를 연구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가려면 금융을 포함한 우리나라 산업 구조가 5년 안에 바뀌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회장은 "변하는 세상 속에서 내가 우리 지역의 경제와 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재능 기부'도 할 예정이다. 김 회장은 "지역에 기반을 둔 회사 운영 등을 내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자문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지역 사회는 물론 청년층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얼마든지 컨설팅을 해줄 수 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JB금융지주가 인생의 마지막 직장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다른 계획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물론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 않겠는가"라고 여지를 남겼다.
김한 회장은…
△1954년 서울 출생 △1972년 경기고 졸업 △1977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업 △1979년 삼일회계법인 입사 △1984년 동부그룹 미국법인 사장 △1993년 대신증권 국제본부장, 인수본부장, 기획본부장 상무이사 △1998년 금융감독위원회 기업구조조정위원 △1999년 유클릭 사장 △2004년 메리츠증권 부회장 △2008년 KB금융지주 사외이사 △2010년 전북은행장 △ 2013년 JB금융지주 회장 △ 2014년 광주은행장
[김강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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