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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정구용 "갈라파고스 규제에 주총대란…56년 묵은 3%룰 없애달라"
입력 2019-02-26 17:04  | 수정 2019-02-26 21:06
정구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인지컨트롤스그룹 회장·74)에게 기업 경영은 자전거 경주다. 구르는 자전거 바퀴에서 넘어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한다. 그는 매주 3회 땀이 흠뻑 젖도록 자전거를 타고 다른 날에도 운동을 멈추지 않는다.
혈액암 투병 이후 체력 관리는 단순한 운동이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다. 그에게 기업 경영도 자전거 경주와 같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오로지 사업 구상뿐이고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곧바로 임직원에게 전화를 건다. 끊임없이 투자하고 신사업을 발굴하지 못하면 생존에서 도태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1978년 시작한 자동차부품회사 인지컨트롤스를 매출 1조원 회사로 키웠지만 여전히 신사업을 찾아다닌다.
지난 21일 매일경제신문과 만난 정 회장은 "경영인은 자전거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페달을 계속 밟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에는 한 기업을 일군 경영자가 아닌, 국내 상장사들을 대표하는 상장사협의회 회장으로서 목소리를 높였다. 정 회장은 "기업인들이 부정이나 저지르고, 임금을 적게 주고, 일만 많이 시키는 집단으로 치부되고 있다"며 "나를 포함해 상장사 오너들은 어떻게 하면 해외에서 먹거리를 찾을까 해서 비행기에서 쪽잠을 자고 다른 여흥 없이 곧바로 귀국하는 1박3일짜리 해외출장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경쟁 상대는 중국도 인도도 아닌 독일과 일본"이라며 "기업인들이 국제무대에서 뛰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더드다운 기업환경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정 회장은 "상장사 주주총회 시즌 개막과 함께 주총 대란부터 걱정해야 한다"며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3%룰'은 56년이나 묵은 상법이다. 이제는 고쳐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주주총회 시즌이 시작됐다. 상장사들은 어떤 문제를 토로하나.
▷올해 주총 안건이 부결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장사가 154개다. 전체 상장회사의 10%에 이른다. 이른바 '3%룰' 때문이다. 3%룰은 감사와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가 의결권 주식의 최대 3%만 행사하도록 제한한 규정이다. 감사를 선임하기 위해선 주식 총수 중 25% 이상이 주총에 출석해야 하는데 3% 외 부족분을 일반 주주로 채워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해 소액주주의 주총 평균 참석률이 7.28%다. 당연히 주총에서 안건을 처리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기업 중 10%가 주주총회에서 부결이 나는 것은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해결 방안은 없나.
▷3%룰은 2017년 12월 섀도보팅이 폐지되면서 부작용이 나타났다. 섀도보팅제는 의결권 미행사 시 예탁결제원이 주총에 참석한 의결권 행사 주식의 찬성·반대 비율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3%룰 자체가 섀도보팅의 보완 제도 격으로 도입된 만큼 섀도보팅 폐지와 함께 일몰됐어야 한다. 또 엄격한 결의 요건은 소액주주, 대주주, 국민연금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다. 이 제도는 1963년에 만들어졌다. 당시는 글로벌 시장이 아니라 각자 나라 안에서 경쟁하는 구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제도다. 기업인들의 손발을 다 묶어 놓으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할 수 없다.

―전자투표제가 섀도보팅 폐지의 대안으로 거론된다.
▷전자투표제도 실효성이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정기 주총 기준으로 전자투표 행사율은 3.9%에 불과했다. 국내 소액주주들의 평균 주식 보유 기간도 코스닥의 경우 3.1개월에 불과하다. 주주권 행사보다는 빠른 환매를 통한 수익 창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얘기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전자투표제도 도입에 자금을 쓰고도 감사를 선임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대주주 전횡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민주주주의란 국민이 투표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후보를 잘못 선택하면 그 사람이 임기가 끝날 때까지 고통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은 다르다. 대주주는 기업을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들이다. 직원을 다 책임지고 기업이 침몰하면 스스로 몸을 묶고 있지 탈출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3%룰이 필요한가. 논리적으로 따져 보면 주식은 한 주당 한 개의 의결권이 있는 것이다. 3%룰로 대주주의 전횡을 얘기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최근 기관의 스튜어드십 코드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보나.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을 단기차익을 노린 펀드에 취약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 기업들이 미래에 투자할 돈을 경영권 방어에 사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 등에 자금이 투입되면 그만큼 투자에 필요한 돈이 줄어든다.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최고의 복지 일자리가 줄어들면 슬퍼지는 것은 결국 국민이다. 단기 성과를 노린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하면 사람을 대량 해고한다. 펀드는 사람을 비용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최고의 자산으로 생각하는 기업인과 다르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마치 기업을 견제하는 기능처럼 생각하는 것이 안타깝다.
―'차등의결권' '포이즌필'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인가.
▷포이즌필 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이 필요하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발생하는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미리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 기업들이 경영권을 걱정하지 않고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게 해주자는 것이다. 방패를 쥐여줘도 싸움에서 지는 기업은 도태되도록 놔둬도 된다. 차등의결권제도는 벤처기업 육성에 필요하다. 이미 상장한 회사는 차등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하지만 비상장 벤처기업은 창업자로 하여금 적은 지분으로 경영에 집중하면서 미래를 위한 투자에 자원을 집중하게 해준다.
―기업인 상속세도 논란이 되고 있다.
▷기업을 물려주면 특권을 물려주는 것처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기업인들은 시원치 않은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줄 생각이 없다. 직원들은 최악의 경우 직장을 그만두면 되지만 우리는 배에 묶여 같이 침몰하는 사람들이다. 물려받은 자식이 기업을 잘못 경영하면 아버지 유산을 못 지키고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 누구보다 절실하게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기업인들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최고의 복지인 일자리를 만드는 사람들로 봐주면 안 되겠는가.
―상속세가 부담이라는 목소리가 있다.
▷기업들이 그동안 실수도 하고 잘못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따져 보면 상속세가 없으면 일감 몰아주기의 유인이 줄어들 수도 있다. 회삿돈을 빼먹어서 들통나서 손해 보는데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최대주주의 경우 기존 50%에서 할증이 붙어 약 65%까지 올라간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상속세를 낮추면 일감 몰아주기도 순환출자고리도 해결할 수 있다.
―기업가 정신을 무엇으로 보는가.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기업가 정신을 창조적 파괴로 정의했다. 심플하게 요약하면 기업가 정신은 모험심이다. 기업가는 모험심을 잃으면 경영자로서 수명이 다한 것이다. 해외에 공장을 세우고, 신사업을 발굴하는 것 등이 모두 모험심이다. 이것들이 100%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모험심도 의욕이 있어야 나온다. 기업인을 부정이나 저지르고, 일만 많이 시키는 존재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기업인은 자전거 바퀴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투자하고 모험하는 사람들이다. 기업은 성장해야 하고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 페달을 안 밟으면 죽는다.
―정부와 협업은 잘되고 있는가.
▷정부에서 500개 글로벌 기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기업을 하려면 적어도 글로벌 스탠더드 환경을 갖춰 달라는 요청을 했다. 최소한 주총은 어려움 없이 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상장사협의회에서 기업을 대변해서 설명하는 것들이 만족할 만큼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인도나 중국과 경쟁하는 나라가 아니다. 독일 일본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환경도 글로벌 스탠더드로 만들어줘야 한다. 한 번에는 안 되겠지만 환경이 조금씩 변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일호 기자 / 박의명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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