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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집사` 국민연금…자신의 집사에는 권한 안줘
입력 2019-02-17 18:42  | 수정 2019-02-17 21:06
정관변경 주주 제안을 하며 한진칼에 대한 경영 참여를 선언한 국민연금이 대상 기업에 대해 직접투자로 확보한 지분이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주주권 행사 타당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자체에는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직접 투자하지 않는 자금에 대해서까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17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지난 1일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 제출한 회의 자료에는 국민연금이 보유 중인 한진칼과 대한항공에 대한 직접투자와 위탁투자 현황이 나와 있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 7.1%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직접투자분은 전혀 없고 전량 위탁투자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코스피200을 벤치마크 지수로 쓰고 있는데, 대한항공은 코스피200 내 기업으로 국민연금의 직접투자 자금이 대거 들어간 반면 한진칼은 시총 200위 밖이라 주로 위탁투자 형태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국민에게서 부여받은 스튜어드십(집사)을 가동해 한진칼에 경영 참여를 하는 것이라면, 민간운용사에 위탁한 지분은 해당 운용사들이 스튜어드십을 받아 경영 참여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국민연금이 직접 투자하지 않는 자금에 대해서까지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의사결정에 대한 사후 논란을 더 키울 수 있다"며 "가이드라인을 정해 의결권 행사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는 자산운용사에 의결권 행사까지 맡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평가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위임을 한 것은 일종의 '네가 다 알아서 하라'는 것이고 '성과가 부진하면 책임을 묻겠다'는 것인데, 위임한 자금에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사실상 국민연금의 '갑질'"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연금이 직접 투자해 보유한 주식에 주주권을 행사하는 데 대해서도 논란이 나온다. 국민연금의 개별 기업에 대한 직접투자가 패시브투자(인덱스를 통한 간접투자)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직접투자 자산 중 80~90%가 패시브투자를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 연기금 출신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이런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패시브(지수 추종형 투자) 투자에서는 중립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고, 액티브(개별종목 투자)하게 운용하는 것은 위탁 운용사에 주주권 행사를 내어 주는 게 필요하다"며 "국민연금이 지금같이 행동주의를 표방하고 싶으면 행동주의 펀드를 만들어 거기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일본공적연금(GPIF)이 이같은 사례이다. 일본 증시에서 패시브투자만 하는 GPIF는 개별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모두 민간 자산운용사에 위임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 캘퍼스(CalPERS) 역시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개별 의사 결정은 운용사에 맡긴다.
성 교수는 "주주권 행사로 기업 경영이 바뀌었는데 주가나 기업가치에 변화가 없거나 더 떨어지는 경우, 주주권 행사가 해당 기업에 전혀 먹혀들지 않는 경우 등 국민연금이 주요 사안에 대해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고 평가했다. 국민연금이 의결권에 한해서는 위탁운용사에 위임할 계획이지만 이 또한 법률 정비가 마무리됐음에도 제도 시행이 늦춰지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개별 주식에 대한 주권이 국민연금에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아울러 민간 자산운용사는 국민연금에 비해 단기 차익실현 관점에서 투자를 집행하기 때문에 기업의 장기 가치 제고를 위한 주주권 행사는 국민연금이 직접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기금을 위탁받은 민간 자산운용사가 개별 주식을 매매하더라도 주권은 국민연금에 있기 때문에 한진칼에 대한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는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며 "의결권 위임에 대한 시행령 개정 역시 '할 수 있다'이지 '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관련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마련해 제도 시행에 나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제림 기자 / 유준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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