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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사가 대신 내준 전세금 1607억…1년새 4배 급증
입력 2019-02-10 18:22  | 수정 2019-02-10 21:00
# 지난해 9월 신혼집으로 서울 동부이촌동 전용 59㎡ 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한 손 모씨(33)는 최근 전세금 시세 하락으로 불안한 마음이 커지고 있다. 당시 시세가 5억원인 것을 많이 깎아 4억2000만원에 계약했다고 좋아했는데 최근에는 4억원 급매물도 실거래된 것을 확인해서다. 손씨는 "아직 재계약 기간이 많이 남았지만 전세금이 4억원보다 더 떨어지면 이사 때 자금 융통에 어려움이 있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 올해 7월 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파트의 전세 재계약을 앞둔 김 모씨(45)는 최근 주변 아파트의 심상찮은 입주물량과 전세금 하락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용 84㎡ 아파트는 2017년 7월 8억8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했는데 최근에는 8억원 매물도 나오고 있어서다. 김씨는 "송파 헬리오시티에 이어 2년 뒤에는 둔촌주공까지 2년 간격으로 입주물량이 쏟아진다고 해서 전세 매물들을 매주 챙겨보고 있다"고 말했다.
석 달 넘게 전세금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세입자들이 제때에 전세금을 회수하지 못하거나 일부 떼이게 되는 '깡통전세'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최근 전세대출 보증기관의 전세금 반환보증 지급액도 증가하면서 금융감독당국도 역전세 물량 증가를 면밀히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10일 금융당국과 업계 등에 따르면 보증회사가 보험 가입자들을 위해 집주인 대신 전세금을 지급한 '반환보증 실적'이 지난해부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SGI서울보증이 장병완 국회 정무위원회 민주평화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실적' 자료를 종합하면 지난해 두 회사가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준 액수는 1607억원에 달한다. 2017년 398억원보다 4배 이상 커진 금액으로 상품 출시 이후 역대 최고액이다.

'깡통전세'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상품에 가입하는 건수도 증가 추세다. 지난해 가입 건수는 11만4465건으로 2017년의 6만1905건보다 2배 가까이 많아졌다. 지난달에는 1만1272명이 가입해 전년 동기 대비 가입자 수가 81%나 폭증했다.
이런 가운데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 하락세는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 셋째 주에는 0.08%, 넷째 주에는 0.07%가 하락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월 첫째 주에 -0.10% 하락률을 보인 이후 10년 만에 가장 가파른 하락이다. 최근 전세가 하락은 입주물량 증가와 지방경기 하락 등에 영향을 받으며 매매가 하락과 같이 움직이고 있어 업계의 우려는 크다.
금융감독당국은 입주물량 증가에 대비해 지난해 중순부터 소비자들의 전세금 반환보증 가입을 독려해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조선업 불황 영향으로 가격이 많이 하락한 경남 일부 지역 등에서 국지적 수급불균형이 이어지고 있다"며 "당장 위기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위기상황에 대비해 전세보증과 대출 현황 등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 2~3년 새 집값 상승, 매매수요 둔화, 입주물량 증가 등의 영향으로 전세대출 잔액도 급증했다. 2015년 말 41조4000억원이던 은행권 전세대출 잔액은 2016년 말 52조원, 2017년 말 66조6000억원으로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 말에는 92조3000억원까지 커졌다. 지난해에만 전세대출이 38%나 급증했다는 얘기다. 지난해까지는 전세금 상승폭도 커 세입자들이 높아진 전세금 차액을 조달하기 위해 은행권 대출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감독당국도 최근의 역전세난 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월 말 가계부채관리 점검회의에서 "지난해 높은 증가세를 보인 전세대출은 부실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전세가가 하락하고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할 위험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시중은행들의 관리를 당부한 바 있다.
금융위는 올해 중 전세대출을 제외한 신규 취급액 기준 비율을 신설하고 인센티브 체계를 개선하는 등 전체 주택담보대출 중 전세대출 부분의 관리를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 전세금 반환보증이란
'깡통전세'를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불리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은 전세 계약이 끝났는데도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할 때 보증기관이 임대인 대신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반환해주는 상품이다. 이름이 비슷한 상환보증은 세입자가 은행에 전세대출금을 상환할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해 보증기관이 세입자 대신 대출금을 상환해 주는 상품이어서 구분해서 봐야 한다.
새로 전셋집에 들어가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 세입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자금 안심대출'을 이용해 대출 상환보증과 반환보증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 전세대출 상환보증은 주택금융공사와 SGI서울보증보험 모두 취급한다. 하지만 두 회사의 상품은 상환보증만 보장하고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돌려받아야 하는 전세금 반환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HUG의 '전세자금 안심대출'은 전세보증금 기준으로 수도권은 5억원 이하, 지방은 4억원 이하 주택만 가입할 수 있다. 보증금의 80% 이내에서 최대 4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대출 신청 때 전세자금 안심대출을 이용하지 않은 세입자나 대출을 받지 않은 세입자가 '반환보증'만 별도 가입하는 것도 가능하다. 세입자는 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과 서울보증보험의 전세금보장 신용보험 2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 가입할 수 있다.
[이승윤 기자 / 김강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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