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업무는 올스톱 2월달 월급은"…법정관리 신청에 뒤숭숭한 화승 직원들
입력 2019-02-07 15:12  | 수정 2019-02-07 15:22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화승 본사 전경

"오늘부터 업무는 올스톱이에요. 2월달 월급은 나온다고 하지만 걱정이죠." (화승 직원 A씨)
법정관리를 신청한 화승이 7일 임직원들에게 법정관리 신청에 관한 공식 입장을 전달했다. 서울회생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한 지 일주일만이다. 설 연휴가 끼어 공식 확인이 늦어졌다는 게 회사 측 입장이지만, 연휴 내내 각종 추측에 시달려야 했던 직원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날 화승에 따르면 회사 이름으로 사내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지난달 31일자로 법률 대리인인 법무법인 지평을 통해 서울회생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는 내용이다. 이미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해당 내용을 접한 상당수의 직원들은 새로울 것 없는 회사 측 입장에 도리어 화가 난 상황.
지난 1일 화승 직원들은 어리둥절하며 퇴근을 했다. 이례적으로 오전 11시 회사가 전 직원의 퇴근을 명했기 때문이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설 상여금은 따로 없었다. 그럼에도 일찍 퇴근한다는 기쁨에 서둘러 고향길에 나섰던 직원들이었다.
직원 B씨는 "어쩐지 불안했다"며 "아무리 설 연휴 전이라도 11시에 퇴근한 적은 없었는데 결국 이런 사태까지 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B씨는 "회사가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법정관리까지 갈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 못해 충격이 크다"며 "심지어 이런 큰 일을 언론 보도를 통해 먼저 접하다니 회사에 배신감마저 든다"고 말했다.

화승은 국내 대표 스포츠 브랜드 '르까프'를 비롯해 케이스위스, 머렐 등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를 유통하며 사세를 확장해 왔다. 전국에 르까프 매장 280곳, 케이스위스와 머렐 매장을 각각 160여곳 운영하고 있다.
180여명의 화승 본사 직원들의 업무는 현재 거의 중단된 상태다. 법원의 기업회생 절차 개시 여부 결정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회생법원은 이달 말까지 화승의 법정관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때문에 최대 한달 간 화승 본사 직원들 뿐 아니라 납품업체와 원부자재업체 등의 직원 수까지 더한 1만5000여명의 업무가 올스톱 된 셈이다.
가족 생계가 달린 직원들은 월급 걱정이 앞선다. 직원 A씨는 "현금유동성이 이렇게 나쁜데 월급이나 제대로 나올런지 그게 제일 걱정이다"며 "회사에선 월급 지급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월급날 가봐야 아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화승은 1998년 외환위기 때 한 차례 부도를 내기도 했지만, 화의 절차를 거쳐 회생에 성공한 바 있다. 이후 아웃도어 열풍 속에 2011년에는 매출액 5900억원 영업이익 177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해외 스포츠 브랜드가 점차 강세를 보인데다 아웃도어 시장마저 침체를 겪으며 경영에 적신호가 켜졌다. 결국 화승은 2016년부터 영업손실 192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했다. 2017년에는 영업손실이 256억원으로 확대됐다.
직장인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에 올라온 글
벌써부터 인력 이탈 우려가 나온다. 가뜩이나 이직률이 높은 패션업계인데 법정관리를 신청한 회사에서 더 이상의 비전을 찾기란 어렵다는 판단에 옮길 수 있을 때 더 빨리 옮기자는 심산이다.
직원 C씨는 "법정관리 여부를 둘러싸고 회사에 대한 실망감이 커 이직 러쉬가 일 것"이라며 "회사 측에선 퇴직금 정산은 문제없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많은 수의 직원들이 한꺼번에 나가게 되면 회사가 감당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직원 뿐만 아니라 '납품업체 사장님'들 역시 걱정이 태산이다. 지난해 8월부터 화승에 납품한 물품 대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업체가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화승이 발행한 5개월짜리 어음 결제일만을 기다리고 있던 남품업체들은 갑작스런 화승의 법정관리 신청 소식에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화승 관계자는 "기업회생 신청으로 대리점 등에 지급해야 할 대금이 묶이게 돼 이들 업체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 부분부터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현재 업체별 미결제 금액 등을 정확히 집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법원이 국내 1호 신발 기업인 부산 동양고무산업을 모태로 둔 화승의 브랜드 가치 등을 높이 평가해 기업 회생 절차를 개시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화승의 지분은 산업은행(KDB)과 KTB PE가 주도하는 KDB KTB HS 사모투자합자회사가 100%를 갖고 있다. 이들 재무적 투자자들은 그 동안 화승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침체기에 접어든 스포츠 의류·신발 업계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일며 기업 회생에 대한 우려 역시 크다. 업계 관계자는 "화승의 법정관리 신청 소식이 매우 안타깝다"며 "화승 뿐 아니라 많은 패션업체들이 대대적으로 할인 정책을 펴며 제살 깎아먹기식 경쟁을 펼쳐 결국 살아남아도 살아남는게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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