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김만제 전 경제부총리 별세
입력 2019-01-31 17:14 

1980년대 한국경제 중흥기를 이끈 김만제 전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31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김 전 부총리는 29세에 미국 미주리주립대 교수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재무부 장관, 경제부총리, 삼성생명 회장, 포항종합제철(포스코) 회장 등을 거쳤다.
김 전 부총리는 서강대 경제학과 부교수로 재직하던 1971년 당시 37세의 나이에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KDI 초대 원장으로 발탁됐다. 교수 재직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KDI 설립 작업에도 관여한 후 초대 원장자리에까지 오른 것이다.
연구원 한 명 없는 원장으로 임명된 그는 이후 11년간 KDI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당시 김 전 부총리는 연구진을 구성하기 위해 해외 주요도시를 돌아다니며 박영철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구본호 전 울산대 총장,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 송병락·홍원탁 서울대 교수 등을 직접 스카우트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KDI의 성장기를 이끈 것은 물론 한국경제 발전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
김 전 부총리는 KDI를 설립하며 수석연구원들의 봉급을 대학교수의 3배 수준으로 정하고, 당시 기업들에도 흔하지 않던 성과급제를 도입하는 등 인재유치와 관리에 특별히 신경썼다.

KDI 원장에서 퇴임한 김 전 부총리는 한미은행 은행장으로 잠시 재직한 후 재무부 장관을 거쳐 1986년 경제부총리로 취임하며 5공화국의 경제정책을 주도했다. 김 부총리의 재임시절 한국 경제는 '3저(低) 현상'과 함께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았다. 그는 1975년부터 1981년까지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직을 맡아 통화정책 수립에도 기여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민주당 홍사덕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1994년 정명식 포항제철 회장과 조말수 포항제철 사장이 경질된 후 후임 경영진이 누가 될지 귀추가 주목되던 때 김영삼 정부는 김 전 부총리를 후임 회장으로 깜짝 발표했다. 포스코가 외부인 출신 인물을 회장에 앉힌 것은 김 전 부총리가 처음이다. 당시 정권 실세들과 경제참모진들이 비중있게 거론되던 가운데 제5공화국의 핵심인사가 지명돼 화제가 됐다. 이후로 김 전 부총리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 역할을 했다. 김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 인맥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이권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박태준 초대 포항제철 회장이 복귀하면서 4년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 선거구에 출마해 자유민주연합 박철언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2001년까지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을 역임했으며,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는 2001년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당시 정부가 교육정책에 막대한 재정을 쏟는 것을 비판하며 "경제 정책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정책도 시장원리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힐 정도로 시장주의자였다. "민간의 소유와 경제활동을 통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김 전 부총리는 이후 낙동경제포럼 이사장, 산학연구원 이사장, 대구경북경제통합포럼 공동대표, 대구시 경제고문, DGIST 이사, 대한민국 발전포럼 고문 등을 역임했다.
김 전 부총리는 1934년 경상북도 구미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미국 덴버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미주리 주립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서강대 부교수로 재직한 인연으로 남덕우 전 총리, 이승윤 전 부총리 등과 함께 한국 경제계의 대표적 학파인 서강학파의 일원으로 분류된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차려졌다.
[문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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