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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84%, 오너家 이사 미등재…국민연금 경영개입 힘 못쓸듯
입력 2019-01-24 17:41  | 수정 2019-01-24 20:06
◆ 레이더M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3일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위법에 대해선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 상장사 이사회 구성이나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상 국민연금이 대주주의 불법 의혹에 바로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대기업 주주들이 등기이사로 이사회에 등재된 비율이 낮고 국민연금도 '10%룰'상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제한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주제안소송과 같은 초강수 역시 행사 요건이 까다롭다. 최근 한진칼 사태에서 가장 관심이 쏠리는 것은 국민연금이 대주주의 이사 연임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할 것인지 여부다. 문제는 한진그룹은 조양호 회장 일가가 이사로 등재돼 있기 때문에 만약 대주주의 불법이 드러난다면 국민연금이 연임 반대를 할 여지가 있지만 다른 기업들은 사정이 다를 수 있다. 총수 일가가 대부분 미등기 임원이기 때문에 주주권 행사의 효력이 미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 '2018년 공시 대상 기업집단의 지배구조 현황' 보고서를 보면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에 속한 기업 56개를 조사한 결과 총수 일가의 등기이사 등재 비율은 15.8%로 최근 4년간 매년 감소하고 있다. 총수 본인이 등기이사로 이사회에 들어간 비율은 5.4%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대주주의 불법을 엄단하려 할수록 대주주들이 등기임원을 더욱 기피하며 책임경영이 후퇴할 수 있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대기업 총수들이 이사회에서 기록도 남기지 않고 미등기 임원으로 회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많아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로는 불법을 제재하기 어렵다"며 "책임경영을 하겠다고 등기이사 등재를 한 대주주야 불법이 드러나면 연임을 저지할 수 있지만 아예 미등기로 계속 있으면 주주대표소송 외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에 따르면 총수 본인이 이사로 등재되지 않은 기업집단이 14개(한화, 현대중공업, 신세계, 두산, CJ, 대림, 미래에셋, 효성, 태광, 이랜드, DB, 동국제강, 하이트진로, 한솔)이며, 그중 8개 집단(한화, 신세계, CJ, 미래에셋, 태광, 이랜드, DB, 동국제강)은 총수 2·3세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도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도 "대주주들이 사내이사는 물론 사외이사, 감사까지도 인사권을 가지고 장악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어서 내부 통제는 사실상 어렵다"며 "대주주가 미등기 임원으로 회사 자산을 횡령하거나 배임 혐의가 있다면 이를 막지 못한 이사회 등기이사들에 대해 연임을 반대하는 간접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연금을 납부한 국민의 노후 자산을 훼손하는 이해상충 문제도 제기된다.
국민연금이 임원 해임·직무 정지, 정관 변경, 자산 처분 등을 위한 주주제안을 하는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하려면 '10%룰'을 적용받는다. 경영참여형(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려면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변경해야 한다. 그러면 6개월 이내에 발생한 단기매매 차익을 반환해야 하고 국민연금 자금을 위탁받은 민간 운용사들도 주가 차익 실현을 못하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만약 대주주의 불법을 처단하기 위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하게 되면 현행 '10%룰'에선 기금 수익률에는 오히려 악영향을 준다"며 "주가에 주는 영향도 불분명한 대주주 불법 때문에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건 책임 있는 수탁자의 자세가 아니다"고 말했다.
'10%룰'을 피하고 미등기 대주주들에 대해서도 주주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주주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이 역시 여러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국민연금공단이 지난 16일 발표한 '국내 주식 수탁자책임 활동 가이드라인'에는 불법·탈법에 대해선 관련 판결이 확정되고 손해액을 객관적으로 산정 가능해야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투자기업의 장기적 주주가치 증대 기여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지 회사 임원에 대해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하지는 않는다고 못 박았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임직원들의 불법에 대해 주주소송이 의무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제소요건 충족 여부, 승소 가능성, 소송 실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소송을 제기하게 된다"며 "소송 제기 여부를 결정할 때에는 전문성 있는 법무법인 등 외부 기관에서 승소 가능성 등에 대한 조언을 받아 결정의 객관성과 전문성을 보완한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상에서는 다른 주주들에게서 대표소송 참여 요청이 있을 때에도 제소요건 충족에 필수적인 사례에 한해 소송 제기 여부를 검토한다고 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김제림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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