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할 수 있는게 없는데 …" 수탁위 반대 많았던 까닭
입력 2019-01-24 17:41  | 수정 2019-01-24 23:53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주문한 당일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원회는 다수의 반대 목소리를 보이며 온도차를 보였다. 상법과 자본시장법 등 제반 여건을 감안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주장이 앞선 셈이다. 수탁자책임위는 공식 발표를 통해 "단기 매매차익 반환 등 기금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반대 사유를 간략히 표현했지만 회의에서는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에 대한 격론이 벌어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24일 회의에 참석한 복수의 수탁자책임위원을 통해 확인한 결과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주로 세 가지 형태의 주주제안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사내이사 해임과 독립적인 사외이사 추천, 범죄 행위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이의 사내이사 해임·임명 불가 등의 내용을 담은 정관 변경이다. 이 같은 형태의 주주활동은 '단순 투자'인 국민연금의 투자 목적을 '경영참여'로 변경하고, 주주제안 형태로 이뤄져야 한다.
한진칼에 대한 경영참여 반대가 4명 대 5명, 대한항공은 2명 대 7명으로 수탁자책임위원 사이에서 반대 목소리가 컸던 것은 현재 제반 환경에서 주주제안을 하기에는 무리라는 현실적인 판단이 앞섰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경영참여를 할 수는 있으나 그 실익이 없거나, 경영 개입에 나서기에는 준비가 덜됐다는 얘기다.
조양호 회장과 조원태 사장에 대한 한진칼 이사 해임 관련 주주제안은 경영참여를 반대하는 위원들 사이에서 '이번 주주총회에선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상법 시행령 제12조 4호에 따르면 '임기 중에 있는 임원의 해임에 관한 사항'은 이사회가 그 주주제안을 거부할 수 있다. 이 경우 임시주주총회 소집과 주총 특별결의를 통해 주주제안을 관철시켜야 하는데 발행 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의 찬성과 주총에 출석한 주주 의결권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한진 오너 일가의 한진칼 지분율이 28.95%인 점을 감안하면 특별결의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조 회장과 조 사장의 한진칼 사내이사 임기가 내년 3월이기 때문에 이번에 무리하게 경영참여를 하기보다는 내년에 이사 연임안이 올라올 경우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는 편이 낫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한 수탁자책임위원은 "이사 해임에 대한 주주제안을 하더라도 이사회가 거절해 버리면 그만"이라며 "우호 지분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고 관련 프로세스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내년에 한진칼 이사 연임안이 올라오는 걸 기다리는 게 나은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경영진을 견제할 사외이사 추천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의 준비가 덜된 상황이라는 평가나 나왔다. 노조와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노동자와 소비자 이사 등 총수 일가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사외이사 선임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수탁자책임위원들 사이에서는 국민연금이 프로세스를 갖춰 적임자를 추천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우세했다.
이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힌 수탁자책임위원은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를 해오지 않던 국민연금이 사외이사 추천 후보군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3월 주총에 급하게 후보를 추천하기에 무리가 따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수탁자책임위원들이 주주제안에 반대 목소리가 높았던 것은 국민연금이 경영참여를 선언해 감내해야 할 손해에 비해 실익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단기 매매차익 반환(10%룰)이 대표적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10%룰 완화에 대한 목소리를 주문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미온적인 상황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이미 자본시장법 안에 국민연금의 특례 조항이 많은 상황은 맞는다"면서도 "10%룰 관련 법 개정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가 2월 말 나올 예정인데 해당 결과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제도 개선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유준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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