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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미래 성장엔진 발굴`로 보폭 넓히는 이동걸 산은 회장
입력 2019-01-22 17:19  | 수정 2019-01-22 20:36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에서 "스타트업 육성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며 기업 세대교체를 강조했다. [이승환 기자]
"향후 5∼10년을 바라본 신성장동력 발굴이 중요하다. 기업 세대교체를 주도할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스타트업 육성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에서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기업 세대교체를 강조했다.
그동안의 기업 라이프사이클을 살펴볼 때 '성장 단계' 기업들이 많은 인력을 채용하는데, 한국은 50년 전에 창업한 '성숙 단계' 기업 중심이라는 진단이다. 그런 만큼 산은은 유망 스타트업을 적극 발굴해서 키우는 데 모든 역량을 쏟겠다고 밝히며 기득권 노조의 행동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올해 말까지 대우조선해양·대우건설 등 기업을 안정화 단계로 올려놓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 회장은 노무현·문재인정부에서 경제·금융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정책을 집행한 대표적인 사람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본인 철학을 지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7년 9월 문재인정부 때 초대 산은 회장이 된 후 금호타이어·STX조선해양·한국GM 등의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원칙을 고수해왔다.
■ 대담 = 김대영 금융부장
―요즘 혁신성장을 강조하고 있는데.

▷기업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 향후 5~10년을 바라본 먹거리 발굴이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에서 새로 생긴 기업들은 대거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세대교체가 안 돼 50년 전에 창업한 기업들이 우리 경제를 끌고 나가니까 활력과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신생 기업이 성장하면서 고용을 대거 늘리는 만큼 새로운 산업과 기업이 나와줘야 한다.
―한국 경제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나.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 정부에서 산업 재편, 신산업·신기업 육성, 부실기업 처리 등이 제대로 안 된 영향이 크다. 인구구조 변화는 단기간에 대처하기 힘들고 양극화 해소 등에 대한 방법론은 정치적으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부실기업 처리나 산업 재편, 신산업 육성은 정치적 지향에 상관없이 했어야 하는 일인데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혁신성장 방안은.
▷스타트업을 키우는 것이다. 기술금융이나 모험자본 자금 공급, 혁신성장 지원 체계 등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투자만 해놓고 내버려두면 안 된다. 계속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시기에 자금 지원, 2차 투자, 대출 등 열심히 따라 들어가서 도와주는 체계를 만들고 있다.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
―쉽게 성과가 날 수 있는 분야가 아닌데.
▷'설거지를 하지 않는 사람은 접시도 안 깬다'는 말이 있다. 접시 깬다고 야단만 치면 누가 설거지를 하겠나. 접시를 좀 깨더라도 열심히 해보겠다. 벤처기업을 하다 실패하면 다시 한번 재도전할 기회를 줘야 한다. 이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지금부터 열심히 해도 그 효과는 3년 이상 지난 다음 정부 때 나타나겠지만 미루지 말고 해야 할 일이다.
―신기술은 기존 이익집단의 이익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규제도 변화해야 하고 시대에 맞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는 경직성 때문에 기득권 집단이 생길 수 있다. 기업경쟁력을 파업으로 유지해보려는 일부 노조도 기득권 집단이다. 노사가 합심해서 생산성과 기업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파업만 한다고 일자리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단기적 안목이 바뀌어야 한다. 신기술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오피니언 리더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계속 설명해야 한다. 진보 지식인도 마찬가지다. 제도를 바꾸려고 해도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세상이 변한 부분도 감안해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된다.
둘째로 기득권층을 제외하고 정말 어려운 분들이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벼랑 끝'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변화를 수용하게 하려면 변화에 따른 비용을 사회 전체적으로 함께 부담해야 한다. 사회안전망 수준이 낮으니 근로자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고 계속 나락으로 떨어지는 악순환이 생긴다. 변화가 빠른 경제일수록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져야 한다. A에서 B로 가야 하는데 조정 비용이 너무 크다면 변화가 이뤄질 수 없다.
―한국의 구조조정을 어떻게 보나.
▷부실기업이 방치되면 지역이나 산업이 활력을 잃고 성장이나 변화의 걸림돌이 된다. 빨리 정리할 건 하고 앞으로 나가도록 해줘야 한다. 한국 경제에 활력이 없는 것은 아직 바닥을 못 봤다고 생각해서다. 일단 바닥을 확인해야 다시 올라갈 수 있다. 올해 말까지는 대우조선해양·대우건설·현대상선 등 기업을 매각 전 안정화 단계로 올려놓겠다. 시장 기능을 강화한 전담 자회사를 설립할 예정이다. 구조조정은 이 전담 조직에서 하고, 산업은행은 혁신성장 쪽으로 역량을 집중하겠다.
―현대상선에는 한진해운 출신 혁신적인 인재를 투입한다고 들었는데.
▷주력 부대로 투입하려고 한다. 임원을 보강하고 조직을 재정비하고, 성과평가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단계적으로 유능한 실무진도 보강하겠다. 2022년까지 (화물 취급량이) 지금보다 두 배 이상인 100만TEU가 되려면 인력이 수백 명 더 늘어나야 한다. 주력 부대로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또는 해외 인력을 섞도록 하겠다. 필요할 때마다 5명, 10명씩 충원하겠다. 현대상선은 '올 코트 프레싱'으로 가야 한다. 결국 발품을 팔아야 한다. 향후 2~3년을 보고 조직을 재정비하고 성과평가도 강화하려고 한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최근 수주 증가를 이유로 구조조정을 완화해 달라고 하는데.
▷이익 수준도 불안정하고 전체적으로 이익을 내는 국면으로 보기에는 시기상조다. 또 유가, 환율, 강재값 등 외부 변수 영향도 작지 않다. 유의해서 봐야 한다. '생산효율성 개선'이 중요하다. 대우건설·현대상선 등의 공통적으로 답답한 점이 원가 개념이 빈약하다는 것이다. 화물을 싣고 수주도 잔뜩 했는데 운영할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구조로는 안 된다. 원가를 따지고 수익성과 생산성이 좋아졌는지를 기준으로 보겠다.
―대우건설·KDB생명·동부제철 등의 관리 방향은.
▷다들 중요한 회사다. 정상화돼서 가능하면 빨리 매각하는 게 원칙이다. 헐값 매각 시비에는 동요하지 않으려고 한다. 시장 가격이 가격이다. 정상적으로 운영해줄 기업이 있으면 언제든지 팔겠다. 대우건설은 지금 살 사람이 없다. 남북 경제협력이 이뤄지면 호재가 돼 여기저기서 사겠다는 사람도 나오고 값도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남북 경협 전망은.
▷제재가 풀리고 나면 맞춰 간다는 게 제1 원칙이다. 둘째는, 국책은행으로서 다른 은행과 경쟁하지 않고 베이스를 깔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기구에 가입한다는 전제하에 국제기구, 미국, 중국, 일본, 한국 금융회사가 함께 참여하는 프로젝트가 원활하게 이뤄지는 것이 가장 좋다.
―어떤 산은 회장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산업전환기에 산은의 새로운 역할을 찾고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방향 전환의 기틀을 닦고 정착시킨 사람으로 기억되면 충분하다. 구조조정을 해서 종전의 산업·기업을 조정하고 앞으로 나갈 새로운 기업을 키워야 한다. 이는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구조조정 완료(안정화·매각), 구조조정 시스템화, 혁신 창업기업 육성, 산은 경쟁력 강화가 주요 과제다.
■ 남북경협 마중물…'위험감수자' 산은역할 20년은 더 필요
이동걸 회장은 민영화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앞으로 '20년'은 산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대기업 부실이 발생했을 때 대처할 국책은행이 필요하고, 남북 경제협력, 4차 산업혁명 기술 기업 투자 등에서 '위험 감수자' 노릇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작년에 한국 금융권 수장 중에서 유일하게 방북 특사단에 포함된 그는 개발은행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때 산은 민영화 얘기가 나온 적이 있다. 산은이라는 조직의 미션은.
▷개인적으로 산은이 정책금융기관으로는 20년 정도 더 남아 있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구조조정 측면에서 대형 기업이 어려워졌을 때 감당할 수 있는 금융기관이 필요하다. 남북 경협이나 4차 산업혁명 기술 기업에 대한 위험을 감수할 역할도 필요하다. 이후 시장 기능이 되면 싱가포르개발은행(DBS)처럼 완전 민영화해서 경쟁력 있는 금융기관이 될 수도 있다.
―구조조정 전문 자회사 만든다던데.
▷전담회사를 만들어 시장 원리에 따라 구조조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더 필요하다. 시장에서의 구조조정을 활성화하자는 취지인데 아직 중견기업까지는 될지 모르지만 대기업을 감당하기는 힘들다. 큰 기업이 부실해지면 안전판으로서 떠맡을 수 있는 기관도 덩치가 커야 한다.
―남북 경협에서 산은의 역할은.
▷남북 경협이 상당 기간은 시장 원리에 의해서만은 안 될 수 있다. 초기에 산은이 같이 들어가면서 위험을 분산해줘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줘야 금융회사와 기업들도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개발은행의 시사점은.
▷산은이 돈을 버는 것도 필요하다. 비교우위가 자본시장, 글로벌 쪽에 있다면 그 부분을 키워서 혁신기업이 필요한 대출과 자금을 제공하고 자본시장 기법과 연결 지어서 기업투자금융(CIB)으로 지원할 수 있다.
―버팀목·디딤돌이 필요하다는 건가.
▷산은이 안정되면 벌어들인 것 중 일부는 위험을 감수하는 인내(Risk Tolerance·리스크 톨러런스) 자본 투자에 활용할 수도 있다. 2000억~3000억원 정도 질러서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모델을 따와 만든 'Venture Scale-up 복합대출'도 비슷한 실험이다. 주식 매수권을 받는 대신 이자율을 낮춘 대출이다. 200억원으로 시작한다.
▶▶ 이동걸 회장은…
△1953년 경북 안동 출생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예일대 경제학 박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금융개혁위원회 전문위원 △대통령경제비서실 행정관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재정·금융) 위원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 △한국금융연구원 원장 △동국대 경영대학 초빙교수 △KDB산업은행 회장
[정리 = 이승윤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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