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한 모씨는 요즘 친구들의 연말 선물 고르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한 씨의 선물 목록은 하나같이 '쓸모없는' 물건들로 가득하다. 피자가 그려진 잠옷, 시멘트, 아동 머리띠 등 일반적인 20대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활용하기는 어려운 아이템들이다. 그는 "연말모임에서 친구들과 가장 쓸모없는 선물을 가져온 사람을 가리기로 했다"며 "1등을 하고 싶은데 아직 물건을 못 정했다"고 말했다.
연말연시 모임이 많아지며 쓸모없는 선물·쓸데없는 선물이 젊은층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상대에게 가장 필요하고 값진 선물 대신 소위 생뚱맞은 선물을 주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쓸모없는 선물 후기나 추천 물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모임에 가장 쓸모없는 선물을 가져와 웃음을 유발한 1인을 선발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이들은 "이걸 누가 사?"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이상한 선물을 찾기에 몰두한다.
단골 아이템은 독특한 디자인의 물품이다. 물고기 슬리퍼·사람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정치인 얼굴이 들어간 휴대전화 케이스·도로교통 표지판 등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물건들이 선물이 된다. 이에 성인용품·이벤트 상품 전문점이나 잡화점인 삐에로 쇼핑·다이소 매장이 선물 구매 장소로 인기다. 동대문에 있는 다이소 매장 관계자는 "강아지 장난감을 친구에게 준다며 사 가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젊은층은 쓸모없는 선물을 주기 위해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직접 선물을 만들거나 맞춤제작을 의뢰하기도 한다.
의미없는 포스터도 인기다. 아무 의미없지만 과한 정성을 들이는 것이 웃음을 유발한다. 오른쪽은 권민진 씨가 친구들과 주고받은 쓸모없는 선물들이다. [사진 = 천브로 제공(왼쪽), 권민진 제공(오른쪽)]
포스터 맞춤업체인 '천브로'는 최근 주문량이 부쩍 늘었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진, 특정 정치인의 포스터가 많이 팔린다. 관계자는 "친구 얼굴이나 이름뿐만 아니라 의미 없는 문구를 맞춤 제작하기도 한다"며 귀띔했다. 실제 쇼핑몰에서는 '진촌리 아무개 양치안함', '치악산 복숭아 당도 최고' 등의 문구를 넣은 포스터가 판매되기도 했다. 관계자는 "쓸모없는 선물이지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쓸데없는 선물을 만들면 의미있는 선물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대학생 권혁수 씨(23)도 "쓸모없는 선물하려고 폰케이스 제작을 의뢰했다"며 "직접 그림을 그려온다는 친구도 있었다"고 말했다.
쓸모없는 선물이지만 모임 자리에서만큼은 쓰임새를 뽐낸다. 직장인 권민진 씨(26)는 "전 대통령 머리띠를 직접 제작해 1등을 했다"며 "열어볼 때만큼은 빵 터진다"고 말했다. 선물을 주고받는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도 쓸모없는 선물의 장점이다. 보통 선물을 할 때는 값지고 의미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권 씨는 "친구들과 소소하게 하나의 이벤트를 열 수 있고 보통 선물을 준비할 때는 마음에 들지 않을까 걱정되는데 쓸모없는 선물은 부담이 없어 기분 좋게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준영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소비자분석 연구소 소장)는 "요즘 세대를 의미 없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무민세대라 표현하는데 현실이 치열하니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휘발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라며 "쓸모없는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선물이라는 소비를 통해 놀이를 즐기는 무민세대의 새로운 탕진잼 문화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뉴스국 류혜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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