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주하의 12월 12일 뉴스초점-'미투 법안'이 사라졌다?
입력 2018-12-12 20:10  | 수정 2018-12-12 20:44
지난 8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판결 후 국회에선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안 전 지사가 무죄라면 대한민국 사회가 유죄다.', '미투 운동에 사망선고를 내렸다.', '딸을 키우는 엄마이자 여성 정치인으로서 참담하다.' 그러니 조속히 미투 관련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말이죠. 그래서 그렇게 했을까요.

올 1월 미투 운동의 발화점인 서지현 검사의 성희롱 피해 고발 후 4월까지, 불과 3개월 만에 발의된 관련 법안은 무려 95건이나 됩니다. 그런데 8개월이 지난 지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건 고작 9개. 내용이 중복된 걸 뺀다 하더라도 너무 민망한 수준이지요.

지난 10월 정부가 직접 발의해 연내 입법에 노력하겠다고 했던 미투 관련 법안도, 22개 중 5개만 통과됐을 뿐입니다. 심지어 그중 일부는 이미 2년 전에 발의됐던 것도 있죠. 국회의원은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라는 걸 과시하기 위해서, 정부 부처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당장 소화기 찾는 격.'으로 법안만 쏟아냈던 겁니다.

어찌 보면 놀랄 일도 아닙니다. 우리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는 세계 1위. 20대 국회 전반기에 발의한 법안 수만 해도 무려 만 5천개나 되니까요.

프랑스 의원들이 5년간 발의한 법안은 2천 개가 안 되고, 독일이 4년간 400개 정도라니, 굉장한 수준이긴 합니다. 문제는, 이 중 처리된 게 고작 10%라는 거죠. 하긴 국가의 일년지대계인 내년 예산안 심의도 사흘 만에 겨우 처리했으니, 민생 법안이라고 뭐 급할 건 없었을 겁니다.

'일주일을 못 참습니까, 오늘 통과 안 되면 문제가 생기나요.' 지난달, 법안 심사를 최종적으로 하는 국회 법제사법 위원회에서 나온 말입니다. 혹시 국회의 본분을 잊은 건 아니겠지요. 국회가 밥 먹는 시간, 싸우는 시간, 윽박지르는 그 시간에도 국민은 '고통'이라는 두 글자를 머리에 이고,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는 것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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