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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 홈런의 악몽 신재영 “잊고 싶은데 하루도 잊을 수 없다” [그때 그날]
입력 2018-12-10 06:21  | 수정 2018-12-11 14:13
11월 2일 SK와 플레이오프 5차전 패배 후 고개 숙인 넥센 신재영(오른쪽에서 두 번째). 그는 지금도 그날의 아픔을 치유하고 있다. 사진=옥영화 기자
[매경닷컴 MK스포츠(고척) 이상철 기자] 한동민(SK)에게 최고의 순간은 넥센과 플레이오프 5차전 끝내기 홈런을 때렸을 때다.
한동민은 지난 4일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시상식에서 플레이오프 (5차전)홈런과 한국시리즈 (6차전)홈런 중 하나를 뽑는다면, 전자가 더 인상적이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좋았다”라며 짜릿짜릿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야구팬의 뇌리에도 강하게 남아있다. ‘역대 최고의 명승부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한판이었다. 믿기지 않는 역전에 재역전이 벌어졌다. 4시간54분의 혈투는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그 마침표를 찍었던 한동민의 홈런이었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명암이 뚜렷하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마운드를 내려가던 투수에게도 잊지 못할 순간이다. 느끼는 감정만 다를 뿐이다. 신재영은 사흘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플레이오프 5차전이 열린 날은 11월 2일. 한 달이 지났지만 그 ‘흉터가 지워지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게 괴로운 신재영이었다.
생각하기 싫은데 지금도 그날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내 야구인생에 가장 큰 상처다.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되지 않는다. 그날 이후 (스쳐 지나가다)만나는 팬마다 ‘괜찮다라고 위로해주시는데, 정말 잊고 싶다. 그런데 하루도 잊을 수가 없다.”
신재영은 그날 넥센의 일곱 번째 투수였다. 계획했던 그림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변수가 발생하며 꼬였다. 4-9의 8회말 2사 1루. 신재영은 공 4개로 로맥을 잡았다. 그렇게 끝날 것 같던 경기였고 신재영의 임무도 끝인 것 같았다.
하지만 9회초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박병호의 홈런은 모두를 전율시켰다. 신재영은 왠지 다시 마운드에 설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박병호의 홈런이 터졌을 때, 그의 왼손에는 글러브가 끼어 있었다.

(큰 점수차로 뒤진 상황이라)부담이 덜했다. 그래도 우리가 추격하는 상황이었다. (박)병호형까지 타석에 서는데, 나 혼자 그런 생각이 들더라. ‘홈런을 칠 것 같아. 그냥 그런 기운이 느껴졌다. 그래서 글러브도 끼고 있었다. 그런데 진짜 그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다들 나보고 ‘빨리 팔 풀어라고 하더라.”
넥센이 숨 막히는 승부를 벌일 수 있던 건 신재영이 버텨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9회말 1사 1,2루 위기도 잘 극복해냈다. 무조건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 막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10회초 김민성의 적시타로 승부가 뒤집혔다. 신재영에게 승리투수의 조건이 주어졌다. 그러나 잔인한 운명이었다. 그날은 그에게 그런 날이었다. 희극이 아닌 비극으로.
나 역시 계속 더 던지고 싶었다. (역전한 만큼)편하게 임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쉽지 않았다. 내가 너무 급하게 승부했다. 좀 더 피했어야 했는데.”
11월 2일 SK와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10회말 홈런 허용 후 주저앉은 넥센 신재영. 그는 지금도 그날의 아픔을 치유하고 있다. 사진=김재현 기자
누구 한 명 때문에 그르친 경기는 아니다. 넥센 선수단도 누구에게 책임을 떠넘기지도 않는다. 자신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신재영은 자책한다. 그를 짓누르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한동민에게)끝내기 홈런을 맞은 후 멍했다. 다들 내 주위로 모여 위로해줬다. 형들은 물론 후배들까지 괜찮다는데 안 울 수가 없더라. 흐름이 우리에게 넘어왔는데 내가 지켜주지 못해 졌다. 정말 미안했다. 지금도 너무 미안하다. (오프시즌 운동으로)동료들을 만날 때도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신재영은 김강민과 한동민의 백투백 홈런을 맞았던 순간을 제대로 묘사할 수 없었다. 떠올리기 싫고 잊고 싶은 악몽이다. 그렇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또렷하게 남아있다.
너무 힘들었다. 귀가 후 한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집에 있으면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제대로 잠들 수도 없는 데다 꿈에서까지 나오더라. 그날 내 투구 영상 중 10회말은 한 번도 찾아본 적이 없었다. 도저히 볼 수 없겠더라. 안 보더라도 내 머릿속에는 남아있다. 공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흉터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꼭 ‘독이 되는 건 아니다. 먼 훗날 ‘훈장처럼 바뀔 수도 있다. 신재영도 그날 많은 걸 배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했다.
신재영은 다시 뛰고 있다. 그를 괴롭혔던 손가락 물집 고민을 해결하고자 신경절제수술까지 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다. 과거의 신재영보다 나을 미래의 신재영이 되기 위해.
전반적으로 내가 너무 못했던 한 해다. 처음부터 방법도 잘못 됐다. 천천히 했어야 했는데 서둘렀다. 어긋난 걸 다시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 나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낮아졌다는 걸 아는데 다시 높이고 싶다. 그만큼 잘하고 싶다. (신인상을 탔던)2016년 야구를 버리려고 한다. 그 생각으로 파고드니 잘 안 됐다. 정말 죽어라 운동하고 있다. (신경절제)수술도 최후의 방법으로 택한 것이다. 내년엔 정말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 그 기회가 내게 찾아올 날이 있지 않을까.” rok1954@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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