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배설물에는 200조 개의 로타바이러스와 10만 개의 기생충알이 득실거린다."
지난달 6일 베이징에서 열린 '재발명된 화장실 엑스포'에 연사로 참여한 빌 게이츠가 사람의 대변이 든 유리병을 들고나와 한 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에서 손을 뗀 빌 게이츠는 세계 여행 중 목격한 개발도상국의 위생 실태에 큰 충격을 받고 화장실 개선 사업에 뛰어들었다.
실제로 전 세계 인구 중 45억 명이 안전한 화장실이 없는 환경에서 살고, 18억 명은 대변으로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한다. 마땅한 배설물 처리 시설이 없어 설사병에 걸려 사망하는 5세 이하 어린이 수만 해도 1년에 400만 명에 달한다. 이에 유엔은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2030년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SDG)' 전체를 달성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인구의 60%가 제대로 된 위생 시설 없이 사는 것은 지구 전체의 공중보건과 영양, 경제적 생산성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빌 게이츠보다 앞서 "화장실 혁명이 인류의 미래를 바꾼다"는 기치 아래 활동 중인 기구가 있다. 고 심재덕 수원시장(민선1·2기)의 제안으로 2007년 설립된 '세계화장실협회'(WTA)다. 화장실 문화 정립을 통해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인간 존엄성을 수호한다는 목적하에 꾸려졌다. 하지만 세계화장실협회라는 이름이 주는 생소함 탓일까. 아직까지는 이들의 존재와 활동이 대중에 크게 가시화되지 못했다.
지난 5일 만난 김영철 세계화장실협회 사무총장도 "세계화장실협회라고 그러면 다 웃죠"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장실 얘긴 밥상에서 하지도 못했잖아요. 그런데 WTA는 그렇게 금기시하던 것을 조직화하려고 했던 거고 공론화시킨 거예요"라고 설명했다.
세계화장실협회가 2016년 캄보디아에 조성한 공중화장실 전경. 화장실 근처에 카페 등을 만들어 지속가능한 화장실 운영을 꾀한다. [사진 제공 = 세계화장실협회]
김 사무총장은 WTA를 '화장실 문화 운동체'라고 정의한다. 그도 그럴 것이 WTA는 저개발국에 화장실을 보급하고 위생 시설을 개선하는 일을 핵심사업으로 삼고 있다. 가나, 케냐, 라오스, 몽골, 캄보디아 등을 시작으로 올해 10월 말까지 개발도상국 15개국에 화장실 30개소를 구축했다.위생 시설 미비로 공중화장실이 반드시 필요한 곳에 더해 한국인을 비롯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역이 WTA의 사업 대상 지역이 된다. 특히 지역 선정에 있어 WTA가 집중하는 것은 '지속성'이다. 화장실 구축 이후에도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는지가 보급 대상 국가의 주요한 선정기준이 된다. 그렇기에 상하수도 설비가 갖춰져 있는 국가와 지역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단지 화장실 한 동을 지어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자력으로 화장실 운영이 가능하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제로 캄보디아는 WTA가 구축한 화장실 주변에 카페, 액세서리가게 등을 만들어 수익을 올리고, 그 수익으로 화장실 유지·보수 비용을 충당한다.
현재 WTA의 공중화장실 구축 사업은 수원시의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예산의 일부를 받아 진행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세수 낭비가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김 사무총장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 "돈이 많아서 자랑하는 게 아니라 '왜 화장실이 없어서 죽어가야 하나'는 의문에 많은 이들이 공감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 꿈은 모든 사람이 화장실에서 나오며 미소 짓는 것'이라는 심 전 시장의 말을 인용했다.
사실 1년에 1억~2억에 그치는 수원시 예산은 오직 화장실 구축 등 협회가 진행하는 사업에만 사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인건비 등의 운영비는 모두 후원금에서 충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200여 명의 회원과 15개의 기업에서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으나 기구 하나를 운영하는 데는 턱 없이 부족하다. 김 사무총장은 "후원 회원이 많이 모이면 더욱 활발하게 사업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적 관심을 촉구했다.
사실 화장실 구축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화장실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인식개선이다. 화장실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체화해야 지속가능한 화장실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WTA는 개발도상국의 인식개선을 위한 사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매년 진행하는 리더스포럼에 여러 국가를 초청해 3박 4일의 일정으로 교육을 실시한다. 김 사무총장은 "화장실의 중요성, 화장실 사용예절, 물 절약 등 인식 개선에 중점을 둔 리더스포럼을 올 7월까지 총 5회 진행했다"고 말했다.
WTA는 현재 그동안의 사업 기록을 토대로 UN 경제사회이사회 협의적 지위를 신청한 상태다. 내년 7월 지위 획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협의적 지위를 획득하게 되면 유엔의 정책 회의에 참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 여러 기구와 협력도 용이해져 WTA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협회는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할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 김 사무총장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말 것'을 응답했다. 그는 "집 밖에 있던 화장실이 집 안으로 들어온 지 오래고, 화장실은 생활에서 가장 밀접한 공간이 됐다"며 "우리는 편하게 사용하지만 그러지 못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이 운동이 확대되길 바란다"고 끝을 맺었다.
[디지털뉴스국 오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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